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은 총 53개다. 메달 밭은 모두 빙판 위다. ‘효자 종목’ 쇼트트랙에서 42개(금 21ㆍ은 12ㆍ동9), 스피드 스케이팅 9개(금 4ㆍ은 4ㆍ동 1), 피겨스케이팅 2개(금 1ㆍ은 1)를 수확했다.
반면 눈밭은 철저히 남의 영역이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걸린 금메달은 102개다. 이 중 설상 종목에 절반이 넘는 61개가 걸려있다. 불모지와 같았던 곳에 희망이 생겼다. 강원 정선군 사북읍 고랭지 배추밭에서 보드를 타던 꼬마가 훌쩍 커 세계 톱 랭커와 당당히 레이스 펼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스노보드 기대주 이상호(22ㆍ한국체대)가 2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안게임에서 2관왕(평행회전ㆍ평행대회전)을 노린다. 2016~17시즌 첫 스노보드 월드컵(이탈리아 카레차)에서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최고 성적(4위)을 거두면서 자신감이 한껏 붙었다.
이상호는 최근 본보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2014~15시즌 중후반부터 성적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어 ‘올 시즌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첫 월드컵부터 이런 성적이 나올지 몰랐다”며 “턱걸이로 본선에 갔다면 내 실력을 의심할 법도 했지만 예선을 2위로 통과해 목표로 했던 4강까지 올라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도 해볼만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함께 자리한 이상헌(41) 코치는 “유럽에서 톱 랭커들과 훈련을 하며 초를 쟀는데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이기는 경우가 많았다”며 “활주 기술은 최고 수준으로 올라왔고, 심리적인 부분도 어린 나이답지 않게 피니시 라인까지 차분하게 잘 조절해서 레이스를 한다”고 설명했다.
이상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스노보드를 접했다. 아버지가 배추밭에 만든 눈썰매장을 놀이터 삼아 보드를 탔다. 당시 어린이용 보드가 따로 없어 성인용 중 가장 작은 것으로 골랐다. 이후 사북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스노보드 알파인에 입문했다.
2013~14시즌만 하더라도 월드컵 최고 성적은 52위에 그쳤지만 2014~15시즌 24위, 2015~16시즌 12위로 끌어올렸고 이번 시즌에는 4위까지 올랐다. 이상호는 “스노보드는 섬세한 각각이 필요한 종목”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스노보드를 탄 덕분에 갖고 있는 감각이 남들보다 더 세밀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상호는 주니어 시절부터 독보적인 존재였다. 국내에는 적수가 없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세계 무대를 노크했다. 눈이 내리지 않는 여름에는 유럽으로 전지훈련을 떠났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보던 선수들과 같이 연습을 하고, 실력을 겨루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이상호는 “단지 재미가 있어 시작했지만 점점 대형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며 “요즘 주위에서 큰 관심을 가져주는데 딱히 부담은 없다. 그 동안 설상 종목에 관심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은 관심을 받는 자체 만으로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상호의 눈부신 성장 비결은 대한스키협회의 든든한 지원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협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통 큰 지원을 했다. 2014~15시즌까지만 해도 이상헌 코치가 혼자 동분서주 움직였지만 2015~16시즌 3명, 2016~17시즌 5명으로 늘었다. 현재 이 코치를 중심으로 크리스토프 귀나마드(프랑스) 기술 전문 코치, 손재헌 체력담당 트레이너, 이반 도브릴라(크로아티아) 왁싱 담당 코치, 시모니 프레드릭(프랑스) 물리 치료사 등이 대표팀을 지원하고 있다.
이상호는 “외국에서 훈련을 할 때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는 다른 대표팀이 부러웠다. 중국도 선수 10명에 스태프 5명과 통역이 있었다”면서 “지금은 다른 팀 부럽지 않은 스태프가 꾸려졌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이 코치는 “혼자 있을 때 업무량이 많으니까 놓치는 것이 많아 아쉬웠다”며 “설상 종목은 감각적인 종목이라 선수가 스트레스 없이 운동할 수 있도록 민감한 부분까지 관리해줘야 한다. 이제는 스태프가 늘어 하나, 하나를 세심히 챙겨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상호는 동계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자신했다. 그는 “누구와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며 “실전에서 사소한 실수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아시안게임 이후 2018년 평창올림픽, 2022년 베이징올림픽까지 큰 그림을 그렸다. 이상호는 “아직 나는 지난 시즌 주니어를 막 졸업한 갓난아기”라며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만큼 코스 적응에 유리한 올림픽을 준비하고 다음 대회도 시차가 없는 베이징에서 열린다. 2개 대회를 아시아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운이 진짜 좋은 것 같다”고 웃었다. 보통 스키 종목은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전성기를 맞는다.
오는 4일 월드컵이 열리는 오스트리아로 출국할 예정인 이상호는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국내에서 열리는 테스트 이벤트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이 코치는 “김연아와 박태환처럼 상호도 더욱 큰 선수로 거듭나 스노보드에 ‘제2의 이상호’, ‘이상호 키즈’로 불리는 선수가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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