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첫 새해 카운트다운 오후 10시 경기(고양 오리온-서울 SK)가 열리는 2016년 12월31일 고양체육관. 오후 5시부터 온라인 예매 표를 구하지 못한 팬들의 발걸음이 하나 둘씩 이어진다. 점점 늘어나던 인파는 6시30분 매표소 앞에 절정을 이룬다.
오리온 구단 관계자는 “지난 시즌 챔피언 결정전을 할 때보다 줄이 훨씬 길게 이어졌다”며 “현장 판매를 하는 3,200장은 자유석이라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일찍 찾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 시작 2시간 전인 8시부터 현장 판매를 하지만 7시55분부터 현장 판매를 시작했다. 이 관계자는 “팬들이 출구 밖까지 줄을 설 수 있어 일찍 개시했다”고 설명했다. SK 원정 팬들 또한 120명 가량 체육관을 찾았다.
고양 백석동에서 온 박미경(42)씨는 “집에서 TV를 보며 무료하게 보내려고 했던 연말을 농구 덕분에 아주 멋지게 보낼 수 있어 흥분된다”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고양 식사동에서 가족과 함께 온 김주영(11) 어린이는 “밤 10시 경기가 색다르고 신기해요”라며 “야구 끝나는 시간에 농구를 시작하니까 특별한 것 같아요”라고 설레는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평일 저녁 경기를 마칠 시간인 오후 9시 코트를 누빌 주인공들이 몸을 풀었다. 양 팀 선수들은 낯선 시간에 슛을 던지며 감각을 조율했다. 오리온 이승현은 “지금 컨디션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팀 동료 장재석은 “살짝 졸리다”고 농담을 던졌다. 선수뿐만 아니라 감독도 어색한 기분이다. 문경은 SK 감독은 “바이오리듬이 시차가 안 맞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리듬이 깨질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림을 가르는 3점포, 호쾌한 덩크슛으로 코트를 뜨겁게 달궜다. 프로 선수에게 핑계는 없었다. 팬들은 매진으로 응답했다. 이날 티켓은 3쿼터 시작 전에 5,600석이 모두 팔렸다. 입석 관중 포함 6,083명이 들어찼다. 역대 고양체육관 최다 관중이다.
축제답게 승부도 짜릿했다. 2017년 새해 11분을 남겨두고 결정 났다. 오리온이 74-73으로 앞선 종료 20초 전 SK 제임스 싱글톤이 골 밑에서 결승 2점을 넣었다. 이후 오리온은 이승현이 마지막 슛을 SK 최준용의 블록에 막혔다. 11시49분, 2016년 마지막 경기는 SK의 77-73 승리로 끝났다.
11시59분 코트 중앙에 점등 된 농구공 풍선이 떠올랐다. 5, 4, 3, 2, 1. 정유년 새해가 밝았다. 하늘에서 2,017개의 풍선이 떨어졌다. 이 중 1,000개에는 ‘대박’을 기원하는 로또가 들었다. 가수 김민교는 ‘마지막 승부’를 열창했고, 마지막에는 팬들이 양 팀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체육관을 떠났다.
획기적인 이벤트 경기에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장식했을 뿐이다. 추일승 오리온 감독은 “앞으로 새해 맞이는 농구장에서 매년 하자”며 “농구만의 미풍양속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경은 감독 역시 “예전부터 한 명의 팬이라도 더 끌어 모으기 위해 이런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KCC가 군산에서 경기를 하는 것처럼 농구 연고가 없는 제주도나 중소도시에서 팀마다 한번씩 경기를 하면 색다를 것”이라고 제안했다.
고양=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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