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운영 두 달 하루 이용 2, 3건
또 다른 탁상행정 사례 될 판
CU, 세븐일레븐 등 참여 거부
카드결제 일반화 세태에도 역행
30일 오후 서울 성동구의 한 편의점. 기자가 체크카드로 500원짜리 초콜릿 한 개를 사고 현금 3만원 인출을 요청하자 점원 A씨는 놀란 표정으로 “‘캐시백 서비스’ 이용 손님은 정말 오랜만”이라는 말과 함께 현금과 영수증을 건넸다. A씨는 “서비스 초기엔 인근 대학교 학생들이 호기심에 캐시백을 몇 번 요청했지만 은행 자동화기기(ATM)가 주위에 널려 있는데다 수수료도 ATM보다 싼 편이 아니라 요즘 이용객은 일주일에 많으면 한 명 정도”라고 귀띔했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면서 10만원 이하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캐시백 서비스가 시범운영에 들어간 지 두 달이 지났지만 활용도가 미미해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이미 대중화한 ATM에 비해 이점이 거의 없어 실패한 금융행정 사례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편의점 캐시백 서비스는 올 초 금융감독원이 “은행이나 공용ATM 사각지대를 보완해 현금 인출의 편의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 마련한 금융개혁정책 중 하나다. 은행 입장에선 대당 연간 2,000만원이 넘는 ATM 운영비용을 절감하고, 소비자도 접근이 용이한 편의점에서 편리하게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윈-윈’ 정책이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30일 따져본 시범운영 두 달의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현재 캐시백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편의점은 신세계 계열 위드미 편의점 일부 점포뿐이다. CU나 세븐일레븐 등 대형 편의점은 불참 의사를 밝혔고 1만개가 넘는 점포를 둔 GS25도 빨라야 내년 초에나 참여할 예정이다. 위드미도 1,800여개 가맹점 중 16곳만 시범운영에 나선 상태다.
게다가 이용률마저 낮아 서울 성동구 본사에 위치한 위드미 본점을 제외한 15개 점포를 전부 합쳐 일일 평균 이용 건수는 2, 3건에 그치고 있다. 이날 본점을 찾은 고객 하모(22)씨는 “캐시백을 이용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게 뭐냐”고 되물었다. 본점 관계자는 “보통 하루에 500명 넘게 편의점을 방문하지만 ATM 사용이 어려운 새벽 시간대나 이따금 캐시백을 요청한다”고 전했다.
소비자들이 캐시백 서비스에 등을 돌린 이유는 금융당국이 수요 예측에 실패한 탓이 크다. 우선 캐시백이 ATM을 대체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부터 잘못됐다. 해마다 규모가 줄고 있다고는 하나 은행 ATM 수는 4만6,000여대(6월 기준)로 편의점(3만여개)보다 여전히 많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편의점이 ATM보다 월등히 가깝지 않은 이상 일부러 캐시백을 받으려는 시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수료 등 금전적 장점이 전무한 것도 캐시백이 외면 받는 원인으로 꼽힌다. 캐시백 서비스 1회 이용 시 수수료는 900원으로 ATM(타행기준 마감 후 700~1,000원)과 비교해 저렴하지 않다. 또 돈을 인출하려면 상품도 같이 구매해야 해 오히려 지출은 늘어난다. 직장인 박모(43)씨는 “분초를 다투는 시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쓸데없는 물건을 사면서까지 돈을 뽑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에 역행하는 근시안적 정책이란 비판도 제기된다. 직장인 윤지나(34)씨는 “요즘에는 웬만한 결제는 카드로 해 캐시백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라며 “5분만 걸으면 ATM이 차고 넘치는 금융환경에서 비용 부담만 가중시키는 신규 서비스는 뒷전으로 밀려 날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시범운영 단계인 만큼 좀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금인출시장의 혁신을 꾀한다기보다 ATM이 적은 지역에서 보조적 인출 수단으로 캐시백을 도입한 것”이라며 “전산처리 등 서비스 운영 과정을 보완하고 참여 업체와 은행이 늘어나면 금용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