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6학년 기본 한자 300자 선별
2019년부터 국어 제외 전 과목에
“47년 한글전용 정책 폐기 위기
혼용 금지 국어기본법에도 위반”
시민사회ㆍ국어교사 등 반발 거세
정부가 초등학교 5, 6학년 교과서 일부 단어의 한자 음과 뜻을 적는 ‘한자 병기’를 강행하기로 했다. 한글ㆍ교육단체 등이 한글전용 교과서 폐기라며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30일 초등학교 5, 6학년 교과서의 한자 표기 기준을 발표했다. 교육부가 해당 학년 학생들 학습에 도움이 되는 기본 한자 300자를 선별했으며, 교과서 집필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단어는 한자의 음과 뜻을 표기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초등학교에는 한자 과목이 없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한자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들만 각각 900자씩 배우도록 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2014년 9월 2015개정교육과정 시안에 한자 병기 확대 방침을 넣었다가 시민사회의 반대가 거세자 지난해 9월 확정 안에서는 해당 부분을 삭제한 바 있다.
한자 병기는 2015개정교육과정이 5, 6학년에 적용되는 2019년부터 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 교과서에 적용된다. 교육부는 “전국 초등학교의 98%가 체험활동 시간에 한자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나 적정 수준의 한자 교육 내용과 방법이 없어 지역마다 학습량과 수준이 다르다”라며 “초등학생 수준에 적합하면서도 학습 용어 이해를 돕기 위해 교과서 한자 표기 원칙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예컨대 초등 5학년 과학 ‘태양계와 별’ 단원에서 ‘항성’이라는 단어는 한자의 뜻이 ‘항상 항(恒)’ ‘별 성(星)’으로 ‘항상 같은 곳에서 빛나는 별’이라는 학습용어의 뜻과 가까우므로, 이를 교과서의 밑단이나 옆면에 표기하는 식이다. 기본 한자 300자는 초등 5, 6학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학습용어를 추출, 같은 한자의 출현 빈도와 한문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를 기준으로 전문가들이 선별한 것이라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현재도 초등 교과서에 한자를 표기할 수는 있다. 교육부 내부 지침에 따라 의미의 정확한 전달을 위해 교육 목적상 필요한 경우 괄호 안에 한자를 병기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초등 5, 6학년 교과서의 한자 표기는 지난해 24건에 이어 올해 13건으로 줄고 있는 추세다. 이번에 교육부가 표기 기준을 제시하면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시민사회단체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초등 교과서는 1970년부터 지금까지 47년 동안 한글전용 교과서였는데 한자 병기 방침으로 인해 한글전용 정책이 폐기 위기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글문화연대, 전국국어교사모임 등 54개 한글ㆍ교육단체가 참여한 초등교과서한자병기반대국민운동본부(국민운동본부)는 이날 ‘국어기본법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위배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한글을 한국어로 표기하는 고유문자로 규정, 공문서 작성과 교과서 편찬 시 한자 혼용을 사실상 금지한 2005년 제정 국어기본법이 규정한 한글전용 문자정책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한자강사 등이 낸 국어기본법 위헌 소송에서 지난달 24일 초중고교에서 한자 교육을 선택적으로 받도록 한 교육부 고시는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인 박용규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교수는 “교육부가 결국 한자급수시험을 후원해온 한자단체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자 병기를 강행하는 것”이라며 “한글전용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헌법재판소 판결과 국어기본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법적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초등학생의 한자 사교육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교육부는 “교과서에 표시된 한자를 암기하거나 평가하지 않도록 ‘교사용 지도서’에 명시해 사교육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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