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과 전철이 전국을 그물처럼 연결하고 있는 이즈음에도 증기기관차를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임진각을 찾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는 1950년 12월 31일에 멈춰 섰다. 한국전쟁 때 연합군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개성역을 출발한 기차는 황해도 한포역까지 올라갔다가 전세가 악화되어 내려오던 중 장단역에서 피폭되어 탈선한다. 녹슬고 부식된 채 비무장지대 안에 방치되어 있던 그 증기기관차를 2004년 ‘등록문화재 제78호’로 지정하였고, 보존 처리를 거쳐 2009년부터 임진각에 전시하고 있다.
육중한 쇠바퀴와 그 위에 얹힌 원통형의 큰 화통이 위용을 자랑하던 증기기관차는 1,000개가 넘는 총탄 자국으로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당시 기관차를 운행한 한준기 기관사의 회고에 따르면, 중공군의 공세로 후퇴하던 중에 밤 10시쯤 장단역에 도착하자 미군들이 기관차에 총을 쏘았다는 것이다. 북한군이 사용하지 못하게 모든 차량을 파괴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화차 지붕 위에까지 올라타 피난하던 사람들은 기관차가 흔들리면 떨어져 죽기 일쑤여서 철롯가에는 시체들이 즐비했다고 한다.
김바다 시인의 동시 ‘장단역 증기기관차 화통’은 “빠앙빠앙 기적 소리 울리며” “경의선 철로를 달려 / 북쪽 땅과 남쪽 땅을” 연결하고픈 기관차 화통의 꿈을 이야기한다. 그 꿈으로 버텨 온 긴긴 세월이 또 한 해 숫자를 더한다. 경의선 복원 사업도, 금강산과 개성 관광도 중단되고 개성 공단마저 폐쇄된 거꾸로 가는 남북 관계의 시계를 이제라도 돌려놔야겠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대한민국 헌법 제4조)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을 탄핵한 우리들의 촛불이 정유년 새해에는 남북 관계에도 희망의 빛을 밝힐 것이다.
김이구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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