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 선수가 아니라도 운전대 앞에서 불쑥 솟는 질주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지만 내가 몰 수 있는 차라곤 3기통 엔진을 단 경차 스파크뿐. 가속 페달을 깊게 밟을수록 느껴지는 스파크의 한계가 슬프다. 성능 좋은 차가 있다 해도, 한계까지 몰아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고 위험과 도로 상황, 그리고 연비까지. 욕망의 뒷덜미를 잡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단돈 몇 만 원으로 사고 걱정 없이 전세계의 모든 서킷을 다양한 자동차로 실컷 달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카 레이싱 시뮬레이터’다.
시뮬레이터는 자동차 게임과는 다르다. 시뮬레이터는 오락성보다는 현실을 최대한 재현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 운전 연습을 위한 도구로 사용될 정도다. 몇몇 정교한 시뮬레이터는 프로 레이싱 선수들도 연습에 활용한다. 시뮬레이터는 몸으로 차체 움직임을 느낄 수 없어, 오로지 시각과 청각, 그리고 스티어링 휠로 전해지는 피드백으로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래서 현실보다 더 어렵다. 시뮬레이터로 다양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익히다 보면, 오히려 현실에서는 운전이 더 쉽게 느껴질 수 있다.
모터스포츠 체험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인기있는 시뮬레이터 세 가지를 소개한다.
●아세토 코르사 - PC/콘솔
아세토 코르사(Assetto Corsa), 이탈리아어로 ‘레이싱 셋업’이라는 뜻이다. 이름부터 ‘레이싱 시뮬레이터’다. 2014년 10월 PC 공식 버전이 출시됐으며, 올해 8월 콘솔 버전이 나왔다.
레이싱 커뮤니티의 의견을 반영해, 자동차의 여러 특성을 세세하게 조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진동 시트를 비롯한 다양한 레이싱용 시트와 고가의 스티어링 휠 컨트롤러의 모든 기능까지 완벽히 지원한다. 게임 내에서 휠 얼라이먼트와 리어 스포일러 각도 설정은 물론, 서킷 노면의 상태, 날씨까지 조절 가능하다. 물론 이에 따라 주행 감각이 완전히 달라진다.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커뮤니티를 통해 발전한 게임답게 유저가 직접 제작한 자동차, 서킷 맵 등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 국내 인제, 영암, 용인 서킷도 이미 제작된 사례가 있다. 단, 누구나 사용 가능한 건 아니다. 국내 프로 카레이싱 선수 중 몇몇은 아세토 코르사를 이용해 연습하며 경기를 준비한다.
●프로젝트 카스 - PC/콘솔
프로젝트 카스(Project CARS)는 2015년 5월에 발매된 신작 레이싱 게임이다. 카스는 ‘Cars’가 아니라 ‘Community Assisted Racing Simulator’의 약자로 유저 펀딩에 의해 진행된 레이싱 시뮬레이터 개발 프로젝트라는 뜻. 참가 유저들은 알파/베타테스터가 되며,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 또한 판매 수익은 투자금 비율에 따라 나눠준다.
시뮬레이터들 가운데 그래픽이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다. 또한 엔진음 표현 등 효과음도 뛰어나다. 초보자를 위한 배려도 잘 돼 있어 다양한 설정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 시작할 때 진입 장벽이 낮은 편. VR에도 최적화가 되어 있어 더욱 현실감 있는 주행이 가능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규 자동차나 서킷 등을 구매하는 데 들어가는 추가적인 비용이 적다.
타이어, 서스펜션, 무게중심에 대한 물리 연산이 존재하며, 플레이어가 설정한 물성도 연산과 그래픽에도 반영된다. 차고를 낮추면 무게중심이 변하며, 차체가 낮아지는 걸 그래픽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타이어 공기압, 서스펜션 스프링까지 세세하게 조절 가능하며, 우천 시 수막현상이나 타이어 온도와 압력에 따른 그립 변화 등이 모두 차의 움직임에 반영된다. 이렇게 세세하게 조절해가며 자신에게 최적화된 값을 찾아가는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다.
또한, 커리어모드를 통해 레이싱에 접근할 수 있으며, 카트 레이스부터 시작해 포뮬러클래스까지 도전해 나갈 수 있다. 달력을 통해 스케줄을 확인하고 매니저에게서 메일을 받고 다른 팀의 스카웃 제의를 받는 등 모터스포츠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
단, 다른 시뮬레이터보다 서킷과 차의 종류가 적다는 것은 단점으로 꼽힌다.
●아이레이싱 – PC
소개한 시뮬레이터 중 가장 정교하고 현실적이다. 실존하는 레이스카의 데이터를 활용해 시뮬레이터 속 차를 제작하고 실제 트랙을 동일하게 스캔해 만든다. 해외 선수들이 이미지 트레이닝 연습용으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시뮬레이터다.
레이스는 모두 온라인으로 연결되고, 한 시간 간격으로 레이스가 열리며, 누구나 참가 가능하다. 연습주행, 예선, 본선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이 다 순서대로 진행된다. 규정을 어길 시엔 페널티가 바로 부여되며, 실제 경기에 준하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다. 우연히 온라인에서 전세계 유명 선수들을 만날 수도 있는 행운은 덤!
단, 게임을 한 번 구매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매월 계정 비용이 들어가며, 초기 구매 비용도 다른 게임보다 높다. 추천한 시뮬레이터 중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간다. 물론 실제로 경기를 하는 것과 비교한다면 훨씬 저렴하겠지만 말이다. 일반 차량은 없고 오직 레이스 차량만 있는 게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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