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전북 현대 스카우터가 2013년 수 차례에 걸쳐 심판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지난 4월 검찰 수사로 드러나 팬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최강희 감독과 이철근 단장은 5월 24일 멜버른 빅토리(호주)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홈경기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책임론’을 언급했다.
“불미스러운 일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모든 사태의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 앞으로 사태의 추이를 보겠다.”(최강희 감독)
“제가 단장이다. 구단의 일에는 제가 책임을 져야 한다.”(이철근 단장)
지난 9월 법원은 스카우터에 유죄를 선고했다. 법원 판결이 확정됐고 올 시즌 모든 경기를 다 마무리한 시점에도 여전히 ‘책임진’ 사람은 없다. 당사자인 스카우터를 해고한 게 전부다. 전북 소식에 밝은 인사들의 최근 전언에 따르면 이 단장은 스스로 물러날 의사가 전혀 없는 듯 하다. 최 감독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선수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이고 선수 보강에 힘쓰는 등 내년 시즌 구상에 들어갔다.
이번 사건 판결문은 ‘경기의 공정한 진행과 정정당당한 승부를 생명으로 하는 스포츠의 근간을 훼손하고 공정하고 불편부당한 심판 아래 멋진 경기를 펼치기를 기대하는 국민들에게 실망감과 배신감을 안겨준 무거운 죄에 해당한다’고 이유를 밝히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AFC는 최근 대한축구협회에 심판 매수 사건 판결문과 징계 결과, 사후 조치 등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요구했다. AFC에 소속된 클럽들의 대회 출전 여부를 검토하는 ‘출전 관리 기구’에서 전북의 내년 챔피언스리그 출전권 박탈을 검토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구단 직원이 심판에게 돈을 건넨 사상 초유의 일을 전 세계 축구가 주목하고 있다.
전북 축구단의 모기업은 현대자동차다. 매출액 기준으로 국내 재계 2위인 현대차가 이처럼 유야무야 넘어가는 걸 이해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많다. 대기업 임원을 지낸 한 축구계 인사는 “전북의 최근 성적이 눈부시게 좋지 않았느냐. 심판에게 돈을 준 행위를 구단을 위해 애쓰려다가 의욕이 지나쳐 저지른 실수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고 분석했다.
‘책임’은 한자로 ‘責任’이다. 꾸짖을 ‘책’은 채찍을 뜻하는 朿(자)와 재물을 의미하는 貝(패)의 합성어다. ‘임’은 사람 人(인)과 맡길 任(임)의 합성어다. 영어로는 ‘responsibility’다. response(응답하다)와 ability(능력)가 합쳐진 말이다. 어원 풀이로 보면 책임을 진다는 건 ‘진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응답을 해주는’ 행위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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