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변호인과 같은 주장
재판부는 “감정 결정 보류”
정씨, 대통령과 공모 자백했지만
변호인 “정씨 인정 안 해” 뒤집기
최순실측은 강압 수사 문제 제기
일부 판사들 “영양가 없는 변론”
崔 빌딩서 나온 朴대통령 선물 등
검찰, 추가 증거 제출로 압박
최순실(60)씨가 검찰 강압 수사에 대한 문제제기와 핵심 물증 태블릿PC의 감정을 재차 주장하며 곁가지 물고 늘어지기에 나섰다. 청와대 문건 유출을 인정한 정호성(47)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측마저 돌연 감정 주장을 펴자 검찰이 “지금 대통령 재판을 하냐”며 쏘아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시간끌기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재판부는 감정을 보류하고 본격 심리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29일 열린 최씨 등의 2차 공판준비기일에서다.

정호성도 “태블릿 감정”뜬금 주장
“유무죄 심리가 급하니까 태블릿PC 감정 결정은 보류한다.” 재판장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 전 비서관의 변호인 차기환 변호사가 감정 필요성을 제기하며 끼어들었다. 전날 변호인으로 선임된 그는 “태블릿 입수 절차가 적법한지 다퉈야 한다”며 증거능력을 문제 삼았다.
최씨 측 이경재 변호사는 지난 19일 첫 재판에서 감정을 주장했었다. 재판장은 이날 “그건 정씨 측 공소사실 관련 증거”라며 감정 보류 취지를 밝혔다. 그러자 이번엔 정 전 비서관 측이 최씨 측과 같은 주장을 폈다. 대법정 방청석은 잠시 술렁였다. 정 전 비서관 측은 “47건 문건 전달 행위 자체는 인정한다”면서도 “대통령 탄핵소추일 직전에 JTBC의 입수 경위 해명 보도와 취재팀장의 해명에 모순이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장은 황당한 듯 정씨 측에 “대체로 혐의를 인정했는데 (다시) 부인한다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정 전 비서관 측은 “대통령과 공모했다는 부분은 부인한다”고 밝혔다. 불과 10일 전 법정에서 “대통령의 뜻을 받들었다는 취지로 검찰서 자백했다”고 인정한 사실도 뒤집었다.
“대통령 재판하냐”검찰 거센 반박
검찰은 강하게 반박했다. 공소유지에 직접 나선 이원석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부장검사는 “47건 중에 단 3건이 태블릿에서 나온 것으로 기소됐다”고 응수했다. 이 부장은 “대단히 유감인 것이 정씨는 지난달 3일 체포된 뒤 범행 사실을 일체 자백하고 대통령과 공모관계를 인정해놓고, 이 재판 전날 선임된 변호인이 증거 인정 여부에 어떤 의견 제출도 없이 태블릿을 문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순실 변호사와 동일한 입장”이라며 변호사가 박 대통령과의 공모관계는 부인한다는 데 대해 한마디 던졌다. “여기가 정호성 재판정인지 대통령 재판정인지, 그걸 명확히 해라.”
이에 정 전 비서관의 변호인은 “정호성의 취지를 그대로 옮겼다”고 고집했다. 최씨 측은 “어떤 경로로 문건이 전달됐는지 공소장에 없다. 검찰은 감정에 거부 반응 보이지 말고 자청해서 응하라”며 기름을 부었다.
일선 판사 “최ㆍ정 주장 영양가 없다”
최씨 측은 이날 법정에서 최씨가 검찰에 수시로 불려 나와 강압 수사를 당해 자신의 진술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거듭했다. 앞서 조카 장시호(37)씨와 공모한 혐의에 대한 재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최씨가 수감된 서울구치소에 얼마나 검찰에 자주 불려나왔는지 확인해 달라는 조회 신청도 했다. 재판부는 “진술 임의성 관련 부분이니 채택한다”고 했다.
이런 변론에 대해 일부 판사들은 “피고인에게는 영양가 없는 변론”이라고 보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부장판사는 “재판부의 관점에서는 ‘피고인에게 마땅히 내세울 게 없구나’하는 인상을 강하게 심어준다”며 “어설픈 변론 전략으로 보인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검찰 추가 증거로 압박… 재판부는 속도
검찰은 추가 증거 제출로 압박을 더했다. 주한외교사절이 당선인 시절 박 대통령에게 보낸 선물이 최씨의 미승빌딩에서 발견됐다며 냈고, 고영태 박헌영씨 등 최씨 측근들의 통화 녹음 파일도 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17권) 전체 사본도 냈다.
이어 미르ㆍK스포츠재단 강제모금 과정을 잘 아는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을 비롯해 최씨 소유 회사 더블루K 이사이던 고씨 등 12명을 주요 증인으로 신청했다. 진술 번복 등이 크게 우려되는 증인들이라고 했다.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최씨의 힘을 목격한 광경도 언급하며 “참고인이 복도에서 최씨를 마주치자 조사실로 다시 뛰어들어왔을 정도”라며 “내년 성탄절에 최씨가 사면될까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총 증인 신청은 대기업 총수 등 기업 쪽 23명, 청와대 관계자 5명, 재단 관계자 16명 등 60명이 넘었다.
재판부는 재단 강제모금 혐의부터 서증조사 등을 시작하며 효율적인 재판진행으로 빠른 결론을 낸다는 의지를 보이며 준비기일을 끝냈다. 첫 공판은 내년 1월 5일 열리며, 11일, 19일로 이어진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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