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 커제 9단
백 박영훈 9단
<장면 3> 바둑계에서 일류 선수들은 대개 말을 아낀다. 속으로는 누구랑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어도 목소리를 낮춰 상대를 추켜세운다. 어쭙잖게 자신감을 드러냈다가 상대를 얕보는 건방진 자세라며 야단맞기 십상이다. 더구나 선배한테 허리를 바짝 세운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나쁘다.
이창호 시대까지는 없었던 맹랑한 후배가 나타났다. 이세돌은 상대 실력을 이리저리 재고 “지기가 어려워요.”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일찍이 듣지 못했던 화끈한 말솜씨에 열광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이세돌 역시 나이를 먹어갈수록 말에 매운 맛을 줄였다.
꼭 일 년을 되돌리면 32살 이세돌과 18살 커제가 몽백합배 세계대회 결승5번기를 앞두고 있었다. 상대전적에서 좀 밀리고 있던 이세돌은 “우승 확률이 5대 5”라 점잖게 말했다. 이를 들은 커제는 “이세돌이 나를 이길 확률은 50%가 아닌 5%다.”고 말했다. 이세돌이 이세돌 같은 후배를 만난 셈이다. 이때부터 커제는 한국바둑에겐 밉상으로 찍혔다.
백13까지 흐름을 외길이라 했다. 왜 그러한지 속을 좀 들여다본다. 흑10으로 막아 백 넉점을 잡았다. 흑이 잡은 것이 아니라 백이 버렸다. <참고도> 백2로 몰면 거꾸로 흑을 잡을 수가 있다. 박영훈은 손을 저었다. “백△가 못 쓰게 됐다. 3으로 두어 흑이 좋다.”
백13 없이는 어떤 수를 두어도 오른쪽을 집을 만들지 못할 것이다. 여기까지 갈림은 팽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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