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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분투기] 엄마 나이, 이제 네 살

입력
2016.12.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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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코끝이 찡해 오는 광고를 보았다. 한 살 생일을 맞은 아이의 건강 검진 날, 의사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온 엄마는 병원 복도에 죽 걸려 있는 자신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란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지난 일 년을 기록한 사진을 선물한 것이다. 2년 전 일본에서 만든 영상인데 실제 부부를 촬영해서인지 공감이 간 데다 ‘아이의 한 살 생일, 이날은 엄마의 한 살 생일이기도 합니다’라는 카피 문구가 가슴을 쳤다. 낯선 세상에 태어난 아이에게 지난 일 년은 참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사실 그보다 힘들었던 이는 아이의 엄마다. 광고 속에도 등장하는 말이지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 년’이라고 할 만큼 하루하루가 힘겨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가 태어나면서 엄마도 똑같이 다시 태어난 셈이다. 아이의 한 살 생일이 엄마의 한 살 생일이기도 한 이유다. 첫 돌을 맞은 아이를 축하하기에 앞서 ‘엄마 나이 한 살’을 축하해주자는 뜻이 담겨 있었다.

자연스레 아이가 태어났던 2014년이 떠올랐다. 그 해는 참으로 힘겨웠다. 부서질 것 같은 생명을 돌보는 일 자체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모든 일이 부담스럽고 엄마로서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철없는 내가 무턱대고 엄마가 돼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한 나를 엄마로 둔 아이에게도 미안했다. 시댁의 관심과 사랑에도 삐딱하기만 했고 남편이나 어머니의 작은 말 한마디가 큰 상처가 되곤 했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엄마로 다시 태어난 나에게 적응이 안 된 모양이었다. 그 마음을 다잡는 데 꼬박 일 년이 걸렸다. 온 집안 어른들이 한자리에 모인 어수선한 돌잔치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엄마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그래서 엄마 나이 한 살 생일은 의미가 매우 크다.

며칠 후면 해가 바뀌니 엄마 나이로 네 살이 된다. 엄마 나이 한 살이 이제 막 군에 입대한 이등병이라면 엄마 나이 네 살은 병장쯤 될까. 그래서인지 이제는 좀 여유가 생겼다. 아이의 울음에 전전긍긍하거나 작은 일에 움츠러들며 자책하는 일이 줄었다. 아이 몸에 열이 나기 시작하면 침착하게 해열제를 준비할 뿐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피곤할 때는 바닥에 드러눕고 아이에게 주물러 달라고 요구도 하고 부엌일 하기 싫은 날에는 같이 배달 음식도 시켜 먹는다. 아이도 컸고 엄마도 컸다. 가끔 지나가다 갓난아기를 업고 가는 새내기 엄마를 볼 때면 나는 득도한 표정으로 ‘조금만 버티세요. 곧 편해질 날이 올 겁니다’ 하고 속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그렇게 이제는 엄마 노릇 할 만하다고 친정엄마에게 너스레를 떨었더니 피식 비웃음을 터뜨리신다. “아직 멀었어. 수천 번은 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야 해.” 내년에 엄마 나이 서른여덟 살이 되는 엄마의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올해 여름, 아이가 열성 경련으로 입원했을 때 나는 몇 번이나 가슴이 철렁했는지 모른다. 엄마는 그런 저릿한 기분을 나를 키워오면서 수천 번도 더 느꼈다는 말이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이제 겨우 네 살인데 우쭐하다니 나 자신이 우스웠다. 엄마 말대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수천 번 가슴이 철렁하는 일인데 말이다. 엄마로서의 내 어깨가 또 한 번 무거워졌다.

그래도 어쩌랴. 이미 엄마가 되어 버린 것을. 아이가 점점 크면서 나 또한 엄마로서 점점 성장해 갈 터이니 한 살 때처럼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엄마 나이로 서른여덟쯤 됐을 때 지금의 엄마처럼 내 아이에게 부모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겠지. 문득 궁금해진다. 수천 번 가슴이 철렁하는 일을 겪고 나서 달라진 나는 어떤 모습일까. 엄마로서 잘 성장했을까. 아이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까. 올 한 해 힘든 일 년을 보내고 내년이면 또 한 살 ‘엄마 나이’를 먹을 대한민국의 모든 엄마에게 위로와 감사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정미 전업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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