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 규모 특별구제계정 마련
폐질환外 질환 판정 기구도 설치
피해자가족모임 “큰 틀에선 만족”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9일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법 제정안(가습기특별법안)’을 심의ㆍ의결했다. 이는 2011년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와 원인 불명 폐 손상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이후 5년 만에 처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그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와 범정부 차원의 시스템이 마련된 것이다.
환노위는 이날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를 잇따라 열고, 가습기살균제 3,4단계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최대 2,000억원 규모의 특별구제계정을 한국환경산업기술원에 설치하기로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가습기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날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폐섬유화 증상이 없거나 인과관계 가능성이 낮다는 이유로 그동안 보상 및 치료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3,4단계 피해자들을 위해 특별구제계정을 마련했다는 점. 재원은 가습기 살균제 제조기업(1,000억원)과 원료물질 사업자(250억원) 등 관련 기업이 낸 분담금과 기부금이다. 환노위 야당 간사인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야당은 당초 정부 예산이 들어가는 기금 형태의 재원 마련을 주장했으나 기획재정부 등이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에 정부의 책임은 없다고 버텨, 관련 기업이 책임지는 특별구제계정을 중재안으로 제시해 이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정부가 피해 등급을 판정한 피해자 700명 중 3,4단계 피해자는 60% 정도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섬유화 증상이 확실하거나 가능성이 높은 1,2단계 피해자들과 유족에게만 정부 예산으로 1인당 연간 평균 500만원의 구제급여와 ▦요양급여 ▦요양생활수당 ▦장의비 ▦간병비 ▦특별유족조의금 및 특별장의비 ▦구제급여 조정금을 지급해 왔다. 특별법안에 따르면 3,4단계 피해자들은 앞으로 1,2단계 피해자들과 비슷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판정 기준을 호흡기 질환 등 폐 질환 이외의 다른 질환으로 확대하기 위한 범정부 기구도 만들어진다. 환경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15명 규모의 가습기살균제피해구제위원회가 설치되는데 위원회의 역할은 ▦가습기살균제 제조 및 유통 정보 제공 명령 ▦건강 피해 인정 및 취소 ▦특별유족인정 ▦구제급여 지급 여부 ▦재심사 등이다. 3,4 단계 피해자들 지원을 위해 이 위원회 산하에 폐질환조사판정전문위원회와 폐이외질환조사판정전문위원회도 두기로 했다.
오랜 기간 피해구제 방안을 기다린 피해자와 시민단체는 이날 특별법안의 상임위 통과를 대체로 반겼다.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가족모임 대표는 “피해자들의 요구사항이 대체로 들어가 있어 큰 틀에서는 만족한다”면서도 “다만 애초 올해 안에 본회의 통과를 목표로 했는데 또다시 해를 넘기게 된 것은 아쉽다”고 밝혔다. 그는 “징벌적 손해배상 등 재발방지대책은 향후 다른 법령을 통해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별법안이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환경단체에서는 3,4단계 피해자들의 지원 규모에 대해선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흥규 환경보건시민센터 팀장은 “이달 16일까지 환경산업기술원에 신고된 누적 피해자가 5,000명에 달하는 등 피해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단발성 치료가 아니라 꾸준한 관리를 받아야 하는 질병인 만큼 향후 상황에 따라 지원규모 등을 재논의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습기특별법안은 내년 2월 정기국회에서 법사위원회와 본회의 처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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