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일. 오늘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촉구하며 광화문역 노숙 농성을 벌인 지 1,592일째 되는 날이다. 오로지 의학적 진단에만 의존해 장애 등급에 따라 복지를 차등 지원하는 장애등급제와 국가가 아닌 가족에게 부양책임을 떠넘기는 부양의무제는 장애인들의 인권과 삶을 파괴하는 ‘낙인과 빈곤의 사슬’이다.
전국 장애인들이 소식을 공유하는 SNS에는 농성장 당번과 서명 소식, 이동권 투쟁과 집회 소식, 소소한 일상사가 올라오는데, 유독 이 방에는 부고 소식이 잦다. 22일에도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던 장애 인권 활동가 박현 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나이 33세. 시설에 수용된 삶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산 지 겨우 6년. 갑작스레 찾아온 폐렴으로 인한 합병증 때문이었다.
장애인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 9월,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에서 발표한 ‘장애와 건강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조사망률(인구 10만명당 사망자)은 2164.8명으로, 전체 인구 530.8명 대비 4배나 높게 나타났다. 10대 미만 나이 장애인 조사망률은 37.9배에 달했는데, 전체 인구에서 10만명당 15.3명이 사망할 때, 장애인은 580명이 사망하는 것이다. 자폐성 장애인 평균수명은 28.2세였다. 한국에서 장애인의 삶이 어떤지를 보여주는 충격적인 자료이다. 장애인 사망률이 높은 원인에는 열악한 병원 접근성, 치료 지연, 가난뿐만 아니라 나쁜 제도 문제도 있다. 바로 부양의무를 견디지 못한 가족에 의한 사망, 활동보조인 없이 갑작스러운 화재나 사고에 의한 사망, 장애 등급 하락을 비관한 자살 등이다.
12월 3일, 170만이 모인 촛불집회 광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는 장애인의 삶을 다룬 노래를 랩으로 불렀다. “내 모습 / 지옥 같은 세상에 갇혀버린 내 모습 / 그 모순 자유 평등 / 지키지도 않는 그들의 약속 / 흥 닥치라고 그래 / 언제나 우린 소외받아 왔고 / 방구석에 폐기물로 살아있고 / 그 딴 식으로 쳐다보는 차별의 시선 / 위선 속에 / 동정 받는 병신인줄 아나 / 닥쳐 닥쳐 닥쳐라 / 우린 병신이 아냐 /” 박 대표가 지옥 같은 사회를 향해 토해낸 힘찬 노랫말은 다름 아닌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는 다짐이었다.
침몰하고 있는 정부, 박근혜 정부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은 물론 2017년 중증장애인 관련 예산을 오히려 삭감했다. 장애인을 수용하는 ‘거주시설 지원금’은 181억원 늘리는 대신, 자립생활 지원금은 줄였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단가는 활동보조인들에게 최저임금도 보장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예산안이 발표되자 활동보조서비스를 중단하는 기관이 속출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정책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장애인은 그냥 시설과 방구석에 머무르라는 것과 같다.
2011년 기준 OECD 국가 장애인복지지출 평균은 국가예산의 2.17%, 한국은 0.5%밖에 되지 않는다. 2017년 정부예산은 400조이다. 그 예산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어디에 쓰이는 것인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대통령과 정부가 재벌과 결탁해 이권을 주고받으며 세금 곳간 털기에 급급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약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자기 주머니에 챙겨 넣은 것이나 다름없다.
박현 씨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광화문을 밝히는 수백만 개의 촛불, 이 촛불의 바다가 만들어내야 할 사회가 바로 아무도 소외되거나 차별받지 않는 ‘약자가 없는 세상’이 아닐까. 2017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 ‘약자들의 투쟁’에 더 많은 이들이 함께하기를, 그래서 마침내 ‘강자 없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한다. 광화문역은 전장연이 명명한 박근혜퇴진역이다.
이유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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