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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무법자, 렌터카 택시

입력
2016.12.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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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심야시간대 광란의 질주

사고 위험 큰데 종합보험 안돼

강력범죄 수단 악용 우려도

당국은 관리 손놓고 신고에 의존

각종 모임이 많은 연말을 틈타 렌터카 택시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각종 모임이 많은 연말을 틈타 렌터카 택시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사는 회사원 김모(36)씨는 지난 주 불법 택시를 탔다가 기사의 과속운전으로 차가 미끄러지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부서 회식을 끝낸 뒤 강남 선릉역 근처에서 택시를 잡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그는 한 남성이 “목적지까지 4만원”이라며 접근해 오자 주저하다 응했다. 남성을 따라 들어선 골목길에는 렌터카임을 알리는 ‘허’자 간판을 단 고급세단이 한 대 서 있었다. 일명 ‘나라시’라 불리는 불법 자가용 택시였다. 무심코 탄 택시는 말 그대로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김씨는 28일 “과속 단속 폐쇄회로(CC)TV가 설치된 구간을 제외하고 좁은 골목길에서도 시속 130㎞로 달려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뻔 했다”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각종 모임이 많은 연말을 틈타 렌터카 택시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신호 위반과 난폭운전이 예사지만 사고를 당해도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데다 일부는 범죄 도구로 악용되고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주로 고급 차량을 빌려 통상 택시요금의 2배를 받아 챙기는 ‘자가용 택시’는 수요가 급증하는 심야시간대를 노린다. 27일 자정 무렵 서울 명동과 강남역 일대를 둘러 본 결과 불법 택시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정식 번호판을 단 일반 택시와 달리 자가용 택시는 전부 ‘허’자 번호판이었다. 렌터카를 주차시켜 놓고 호객을 하던 A(43)씨는 “개인택시 면허를 따려면 절차도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들지만 장기 임대한 렌터카는 유지비가 훨씬 적어 이윤이 많이 남는다”고 털어놨다.

택시의 승차거부가 빈번해 불법 택시를 찾게 되는 시민들도 적지 않다. 경기도의 경우 2010년 185건에 불과했던 불법 자가용 영업 적발 건수는 2012년 489건, 2013년 433건으로 증가했다. 지난해부터 신고포상제를 운영 중인 서울시에서도 작년 한 해만 110건의 불법 자가용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달까지 90건의 신고가 들어 온 올해도 연말에 신고가 몰리는 점을 감안하면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단속을 피해 심야에만 운행하는 불법 자가용 택시의 속성상 난폭운전을 일삼아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빠른 이동의 장점 때문에 불법 택시를 찾는 시민이 많지만 교통질서를 어지럽히는 주범”이라며 “사고가 나도 종합보험 처리가 되지 않아 피해는 이용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카카오블랙’ 같은 고급형 택시 이용이 늘고 있어 렌터카를 구분하기도 어렵다. 직장인 황모(39)씨는 “고급 택시 서비스도 외관상 택시 표시가 없어 별 생각 없이 차에 탔다가 이동하는 내내 혹시 불법 택시가 아닌가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전했다.

렌터카 택시는 때로 강력범죄 수단으로 쓰이기도 한다. 직장인 변모(42)씨는 지난 14일 밤 술에 취해 서울 을지로 인근에서 불법 자가용 택시를 타고 귀가하던 중 기사가 준 피로회복제를 먹고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자 차고 있던 1,000만원 상당의 고가 시계는 사라진 뒤였다.

사정이 이런데도 관계 당국은 불법 택시 관리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렌터카로 택시 영업을 하는 사례가 많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대안 제시 없이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개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단속 주체인 지방자치단체도 인력 및 예산 부족을 이유로 피해자 신고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서울시는 공무원 6명이 일주일에 2,3일씩 현장 점검에 나서지만 올 들어 자체 적발한 불법 택시는 6건에 불과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장에 나가면 대번 단속임을 눈치채고 차를 이동 시킨다”며 “ 적발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을 경찰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염건웅 명지대 경찰행정학 교수는 “단속 위주의 사후 조치만으로는 불법 택시 영업을 근절하기 어려운 만큼 렌터카 업체가 대여한 차량을 정기적으로 체크하거나 장기임대 시 자격 조건을 까다롭게 하는 식으로 관계 법령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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