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IT업계 피해 하소연에
별동대 꾸려 2년여 조사 후 결론
칩세트 경쟁사엔 사용권 안 주고
휴대폰 제조사엔 높은 수수료와
‘특허 끼워팔기’로 부당이득 취해
“프렌드 원칙 위배 불공정 행위
과징금보다 시정명령이 더 의미”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동통신시장 ‘특허공룡’ 퀄컴의 시장지배력 남용 행위에 대한 단서를 포착한 시점은 2014년 8월이다. 당시 국내 정보통신(IT) 기업들로부터 “퀄컴이 휴대전화 생산의 원천기술인 표준특허 사용권을 남용해 ‘폭리’를 취하고 있고 이를 ‘퀄컴세(稅)’라고 부른다”는 하소연을 접하면서다. 이후 공정위가 2015년 2월 총 4명의 정보통신기술(ICT) ‘별동대’(전담팀)를 꾸려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후 전원회의를 거쳐 최종 결론을 내리기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 공정위가 “퀄컴이 공정한 시장 경쟁질서를 왜곡했다”고 판단한 핵심 근거는 ‘표준특허 특허사용권(라이선스) 제공 제한’이다. 현재 이동통신 산업은 ‘특허권자의 라이선스 제공→특허 기반 통신칩셋 제조 및 판매→휴대전화 생산’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휴대전화 원천기술인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등 표준필수특허(SEP)를 다수 보유한 ‘특허공룡’이자 통신칩세트 제조ㆍ판매사인 퀄컴은 인텔ㆍ삼성전자 등 경쟁사에 라이선스를 제공하지 않는 방식으로 국내 통신칩세트 시장에서 사실상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퀄컴이 LG전자ㆍ팬텍ㆍ삼성전자 등 휴대전화 제조사에 자사의 통신칩세트를 공급하며 일방적인 라이선스 조건을 부과해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게 공정위의 결론이다.
채규하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휴대전화 제조사 입장에서는 특허 라이선스 없이 제조된 통신칩세트를 구매하면 향후 퀄컴으로부터 특허 공격을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퀄컴이 생산한 칩세트를 구매할 수밖에 없다”며 “퀄컴은 이를 볼모로 ‘을’인 휴대전화 제조사에 시장 기준보다 높은 5% 가량의 라이선스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요구하거나 표준필수특허 외에 제조사가 필요하지 않은 특허까지 묶어 떠넘기는(포괄적 라이선스) 방식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이 같은 사업모델이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이유는 퀄컴이 보유한 SEP가 ‘FRAND(프랜드)’원칙을 적용 받기 때문이다. 프랜드 원칙은 SEP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Fair) 합리적이며(Reasonable) 그리고(And) 비차별적인(Non-Discriminatory) 조건으로’ 제공돼야 한다는 국제 준칙이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프랜드 확약 위배가 곧 경쟁법 위반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위반 가능성을 높여주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공정위와 퀄컴의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09년 12월 공정위는 퀄컴이 휴대전화 제조사에 과도한 라이선스 수수료를 요구하고, 자사 특허의 만료 이후에도 수수료를 계속 지급하게 하는 내용의 약정 체결을 강요했다는 혐의로 2,73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공정위가 2009년 퀄컴에 요구한 사항은 특허권 ‘갑질’ 행위의 중단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공정위는 퀄컴의 사업 모델 자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신 사무처장은 이를 두고 “이번 조치는 과징금보다 시정명령이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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