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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분노의 나날을 떠나보내며

입력
2016.12.2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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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이 저물어간다. 한 해를 정리하다 보니 떠오르는 사건 및 사고가 많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일은 지난봄 우리 사회를 뒤흔든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이다. 갓난아이들을 비롯해 수백 명이 사망에 이른 경악할 사건이었지만 책임자들은 끝까지 꼼수를 부리고 연구보고서까지 조작했다. 이익을 남길 수 있다면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은 비윤리적 기업의 민낯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온 국민의 분노 앞에 관련자들은 결국 무릎을 꿇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평생 잊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저렸던 사건은 신원영 군 사망 사건이었다. 미취학 아동 전수조사로 여러 명의 아동학대자가 발견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영하 8도의 추운 겨울에 한 평도 되지 않는 좁은 화장실에서 한두 끼만 먹으며 학대를 당했던 아이였다. 찬물과 락스 원액을 맞으면서도 그리운 엄마를 부르다가 죽어간 신원영 군 사건은 다시 언급하기도 마음이 아프고 분노가 치미는 사건이었다.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건 또한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사망한 청년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은색 숟가락과 컵라면은 내 마음을 시리게 했다. 소중한 젊은 목숨이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한 채 무참히 죽어가는 현실 앞에서 깊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청년의 삶이 그만의 인생이 아닌, 우리 사회 적지 않은 청춘들의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절망스러웠다.

올해 사건 및 사고들 가운데 정점을 찍은 것은 가을에 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였다. 겨울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이 게이트는 치솟은 국민의 분노 게이지를 여전히 누그러뜨리지 못하고 있다. 당장 국정조사를 보더라도 최순실을 포함해 문제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태도를 보면 국민은 다시 한번 분노하게 된다. 국가라는 공적 기구를 멋대로 사유화한 게 분명해 보이는데도,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발뺌하는 것을 지켜보면 허탈하기까지 하다.

상담사로서 올 한 해를 표현할 수 있는 심리용어 하나를 꼽으라면 그것은 ‘분노’다. 봄과 여름에 끊임없이 일어난 강력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잔인성과 분노조절장애 현상에 대해서 심각하게 우려했었고, 가을과 겨울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비롯된 대중적인 공분(公憤)을 경험했다. 두 분노는 물론 다른 것이다. 전자가 병적인 분노였다면 후자는 당연한 분노였다.

상담사의 시각에서 보면 분노에는 양면성이 존재한다. 분노는 심적 문제를 드러내는 병적인 행동일 때도 있고, 안정을 되찾기 위한 건강한 행동일 때도 있다. 먼저 병적 행동으로서의 분노를 살펴보면 그 기저에는 불안감과 좌절감이 자리하고 있다. 인간은 불안감이나 좌절감이 쌓이면 그것을 풀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성공하지 못할 경우 타인에 대한 공격적 행동을 일으키곤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건강한 분노도 존재한다. 자신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할 때, 정의롭지 못한 사건을 대할 때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자존감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지닌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건강한 분노의 표출에서 중요한 것은 분노의 마음을 치유하는 마무리다. 마무리를 잘 짓는다는 것은 분노를 일으키는 잘못된 원인을 올바로 파악하고 제대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 마무리가 잘되지 않으면 분노는 좌절감이나 우울감으로 바뀔 수 있다. 분노를 이렇게 계속 놓아둔다면 ‘분노 사회’는 ‘좌절 사회’ 또는 ‘우울 사회’로 변화할지도 모른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나는 좌절보다 희망, 우울보다 행복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가을과 겨울에 광장에서 나는 쓰레기도, 연행된 시위자도 없던 우리 국민의 저력을 보았다. 불같이 일어난 공분을 폭력이 아닌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낸 우리 국민의 힘을 느꼈다. 우리의 분노가 마무리될, 곧 열릴 2017년이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꿈꿀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박상희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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