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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다시 찾아온 ‘예측불가능한’ 미국

입력
2016.12.2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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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대통령 탄핵정국 불가측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조만간 한국은 ‘예측불가능한’ 미국이라는 보다 거대한 난제와 직면해야 할 것 같다. 내년 1월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권의 특징이 점점 ‘예측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이라는 한마디로 모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학자는 인사정책은 물론이고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말을 쏟아내는 트럼프에 대해 “가장 예측가능한 점은 그가 예측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며 혀를 찼다.

사실 트럼프는 대북정책 등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도 뒤죽박죽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선 기간 트럼프는 김정은 노동당위원장과 햄버거를 먹을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다른 자리에선 “나쁜 놈”이라면서 “중국이 어떻게든 그자를 빨리 사라지게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오바마 정권처럼 말로만 압박하면서 사실상 손을 떼겠다는 것인지, 북한을 협상파트너로 삼겠다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박근혜 정부가 흔들림이 없다고 자신하는 사드 배치에 대해서도 트럼프는 “실질적으로 쓸모가 없었다”며 미사일방어(MD) 체계 자체에 대한 회의론을 피력했었다. 트럼프에게 한미관계는 혈맹이 아니라 ‘계약’ 관계인 것이다. 미국발 불확실성은 확실히 잠복 중이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 스스로가 예측불허를 자신의 장기로 간주하며 미국 외교도 이래야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출간한 저서 ‘불구가 된 미국’에서 그는 “예측불가능을 좋아한다”면서 협상이 임하기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이쪽의 패를 보여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측불가능해져야만 미국이 다시 강해진다는 신념이다.

물론 예측불가능 전술은 트럼프의 창작품이 아니다. 1972년 미국은 그 20년 전 한국전쟁에서 맞붙은 ‘붉은’ 중국과 돌연 손을 잡았다. 미소가 주도한 냉전이 요동쳤다. 놀란 소련도 미국에 손을 내밀었다. 이런 예측불가능한 게임을 주도한 헨리 키신저가 당시 공공연히 말한 책략이 바로 ‘전략적 애매성’(strategic ambiguity)이다. 미국의 의도를 일부러 모호하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많은 행동의 자유를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예측불가능성은 주로 약자가 쓰는 수법이다. 북한의 핵 장난도 대체로 여기에 속한다. 자신의 속내나 전력을 노출하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교란해 최대한 이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의 예측불가능 운운은 역설적으로 미국의 힘이 그만큼 약해져 예측가능한 방법으로는 세상을 컨트롤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래서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미국 외교의 일관성도 언제든지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 불확실해지면 동맹국은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다. 미국이 1971년 주한미군 1개 사단을 일방적으로 철수시키고 이듬해 중국과 화해하자 박정희 정권은 동맹관계의 예측불가능성을 만회하기 위해 남북대화에 나섰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겠지만 당시 중국에 ‘배반당한’ 김일성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혀 서로를 믿지 않은 남북한 정권이 당시 대화의 이면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모색한 길은 유신체제와 유일체제라는 전대미문의 권위주의 정권이었다. 주지하듯이 이후 지금껏 한반도 분단체제는 빙하처럼 얼어붙었다.

다시 미국이 스스로를 예측불가능하다는 시절이 왔다. 트럼프가 어떤 한반도정책, 아시아전략을 전개할지 불투명하기에 솔직히 불안하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불가측한 미국은 우리에겐 자율성의 확대를 의미할 수 있다. 미국이 연출할 국제질서의 유동성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옴짝달싹 못했던 우리의 운명을 반전시킬 여지를 창출할 수도 있다. 물론 요행은 금물이다. 미국 이상으로 국익을 따지면서 미국의 예측불가능성에 맞서야 한다. 1972년 예측불가능한 세계를 빌미로 안으로는 독재를, 밖으로는 영구 분단체제를 구축한 박정희의 전철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

이동준 기타규슈대 국제관계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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