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터기 조작하고 이중결제
호주 국적의 A(54)씨는 지난 3월 10일 오후 7시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 경기 수원행 버스를 기다리다 김모(54)씨를 만났다. 자신을 택시기사라고 소개한 김씨는 목적지까지 편하게 갈 수 있다며 택시 이용을 권했다. A씨는 김씨 차량에 설치된 미터기를 보고 의심 없이 탑승, 수원에 도착한 뒤 신용카드로 요금을 결제했다. A씨는 “카드 승인이 안됐다”는 김씨 말에 한차례 더 카드를 긁었지만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까지 장시간 비행에 지쳤던 A씨는 이런 사실을 잊고 있다가 한국을 떠나 카드 명세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인천공항에서 수원까지(71㎞) 요금 33만원이 결제돼 있었기 때문이다. 바가지 요금에 이중결제까지 된 탓에 정상 요금(7만원)의 5배에 달했던 것이다.
미터기를 조작하고 요금을 이중 결제해 최대 5배의 바가지 요금을 받아 챙긴 콜밴 기사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인천경찰청 관광경찰대는 사기 혐의로 김씨 등 콜밴 기사 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8일 밝혔다.
김씨는 자신의 콜밴에 미터기를 불법 설치한 뒤 요금이 많이 나오도록 조작하고 요금을 이중 결제하는 수법으로 지난해 2월부터 올 7월까지 A씨 등 외국인 승객 25명을 속여 약 500만원의 부당요금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이 적발한 콜밴 기사 중에는 인천공항에서 강원 철원까지 외국인 승객을 태워주고 정상 택시 요금(17만원)보다 약 5배 많은 80만원을 챙긴 경우도 있었다.
A씨 등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콜밴에 미터기를 설치할 수 없음에도 미터기를 설치하면 외국인들이 정상적인 택시로 믿고 이용한다는 점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외국인이 국내 대중교통요금 체계를 모른다는 점도 이용해 과다 요금을 챙겼다.
경찰은 피해자들로부터 이메일로 신고를 받아 수사에 착수해 이들을 차례로 붙잡았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에게 과다 요금을 받는 것은 국가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는 범죄”라며 “관광 한류를 저해하는 콜밴ㆍ택시 불법 영업행위를 당하거나 목격하면 112로 신고해달라”고 말했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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