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 청문회 발언 후 실행
年회비 492억 중 50억 사라져
SK 사실상 탈퇴… 삼성도 준비
이승철 부회장 쇄신 주도에 불만
기업들 개혁 의견 수렴도 난항
‘전경련 와해’ 최악의 전망까지
LG그룹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탈퇴를 통보하고 내년부터 회비 납부 등 일체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27일 밝혔다. 지난 6일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주요 기업 총수들이 탈퇴 의사를 밝힌 뒤 이를 전경련에 공식 통보한 것은 LG그룹이 처음이다. KT도 이날 전경련에 탈퇴를 공식 통보한 사실을 확인했다. SK는 사실상 탈퇴한 상태이고, 삼성도 탈퇴를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대기업의 전경련 이탈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1961년 한국경제인협회로 출범한 전경련이 더 이상 스스로 쇄신하지 못할 경우 와해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LG 관계자는 이날 “지난주 전경련에 탈퇴를 통보했다”며 “청문회 때 구본무 회장이 탈퇴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이를 실행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청문회에서 구 회장은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을 주도해 정경유착 창구란 비판을 받은 전경련에 대해 “미국 헤리티지재단처럼 운영하고, 기업 간 친목단체로 남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재계에선 LG를 필두로 주요 기업의 전경련 탈퇴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청문회장에서 전경련 탈퇴 의사를 밝히면서 실무적인 후속 작업을 진행중이다. 삼성은 탈퇴의 구체적 시기 등은 관계사와의 조율을 통해 순차적으로 결정할 계획이지만, 내년 2월 총회에서 결정되는 회비를 더 이상 내지 않겠다는 입장을 이미 전경련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SK도 비슷한 상황이다. SK 관계자는 “전경련 탈퇴는 최태원 회장이 국민들 앞에서 약속한 사항이기 때문에 내년 회비를 내지 않고,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전경련에 별도의 통보를 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탈퇴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들 주요 대기업이 탈퇴를 공식화해 회비를 내지 않으면 전경련은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진다. 탈퇴를 통보한 LG그룹의 경우 계열사들이 연간 총 50억원 가량을 전경련 회비로 납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전경련이 기업들로부터 걷은 전체 회비 492억원 중 70% 안팎을 삼성, 현대차, SK, LG 등 4대 그룹이 부담했는데, 이 중 3곳이 빠져나갈 경우 전경련은 현재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전경련은 자산 가치가 3,600억원에 달하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을 보유하고 있지만 건립 비용을 은행 차입으로 조달했기 때문에 현재 발생하는 임대료 수입은 대출을 갚는 데에 쓰고 있다.
LG그룹과 함께 KT도 이날 전경련에 탈퇴를 공식 통보했다고 밝혔다. KT 관계자는 “이달 초 전경련에 탈퇴 의사를 전했다”며 “내년부터 회원사로 활동하지 않고, 회비도 내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KT는 재계 순위 12위의 정보통신(IT) 기업이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금융기관들도 지난 12일 일제히 탈퇴 신청서를 제출했다.
기업들의 탈퇴 움직임이 속도를 내면서 의견수렴을 통해 향후 진로를 결정하려 했던 전경련의 쇄신 작업도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전경련은 내년 2월 정기총회까지 쇄신안을 마련하겠다며 회원 기업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열고 있지만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해 의견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지난 15일 30대 그룹을 대상으로 열린 간담회도 참석률이 저조해 정상적인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했다. 당시 주요그룹 중에서는 LG만 참석했고, 다른 10대 그룹들은 대부분 불참했다.
기업들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특검 수사가 진행중인 점, 내년 사업계획 수립 등으로 여력이 없는 점 등을 표면적인 간담회 불참 이유로 내세웠지만, 쇄신 대상으로 지목된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쇄신안 마련을 주도하고 있는 것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전경련의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 모금 주도로 회원 기업들 상당수가 국민의 비판을 받으며 경영 활동에 차질을 빚고 있는데, 정작 ‘최순실 게이트’에 깊숙이 관여한 이 부회장이 사과 한 마디 없이 쇄신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여러 경로로 회원사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일단 쇄신안을 마련하는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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