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네틱 아티스트 김진우 작가의 남다른 자동차 사랑
22년 동안 60만㎞ 넘게 달리며 쌓은 추억과 영감
1994년 6월 어느 날, 김진우 작가는 이 차와 처음 만났다. 차를 사기 얼마 전 아버지와 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다. 트럭을 피하려다 절벽으로 떨어졌지만, 천운으로 가벼운 타박상에 그쳤다. 가족회의 결과 크고 튼튼한 차를 장만하기로 했다. 여러 차가 후보에 올랐고 쌍용 무쏘가 당첨됐다.
무쏘는 ‘FJ(Future Jeep)’라는 프로젝트 이름으로 개발된 쌍용자동차의 야심작이었다. 영국 왕립예술학교(RCA)의 켄 그린리 교수가 돌고래를 모티브로 디자인했다. 김 작가가 말했다. “난 아직도 쌍용 무쏘와 대우 에스페로의 디자인이 가장 군더더기 없이 예뻐 보입니다.” 그는 이 차를 운전하기 전까지 모터사이클로 크로스컨트리를 즐겼다. 하지만 무쏘가 생기면서 그의 라이프스타일은 달라졌다.
바로 대학 마지막 학기 여름방학이었다. 든든한 네바퀴굴림 차가 생긴 26세 청년 김진우는 두 달 만에 1만2,000㎞를 달렸다. 학생들에게 회화를 가르쳐 번 돈을 모조리 여행에 쏟아부었다. 개강 후에도 방랑벽은 식을 줄 몰랐다. 새벽에 동해로 달려 해돋이를 보고 와 오전 수업을 듣는 건 예사였다. 여행할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커져만 갔다. ‘이곳’을 가면 ‘저곳’이 궁금했다. 여행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차가 멈춘 곳은 바로 캠핑장이 됐다. 부산에서 강원 고성까지 해안 도로를 따라 달릴 땐 20일 동안 30분 거리마다 텐트를 치고 머물렀다. 트랙터가 갈 수 있는 길이면 마다하지 않고 도전했다.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넜다. 서해에서는 물이 빠질 때까지 기다려 바닷물을 가르며 달리기도 했다.
차엔 생존을 위한 캠핑용품과 스키, 스킨 스쿠버 등의 레저 장비가 언제나 실려 있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달린 거리는 4만6,000㎞, 22년이 지난 지금은 60만㎞를 넘겼다. 영업용을 제외하고 개인이 한 차를 이렇게 오래 타긴 드물다. 이 차에는 김 작가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와 동생의 손때도 묻어 있다. 한동안 경북 포항에 있는 그의 아버지도 이 차를 20만㎞ 탔다. 누적 주행거리가 50만㎞를 넘었을 때 아버지는 폐차를 고민했다. 하지만 폐차하기엔 차가 너무 멀쩡했다. 김 작가는 이 차를 다시 가져와 10만㎞를 더 탔다. ‘경북’이란 글자가 남아 있는 번호판은 아버지의 흔적으로 그대로 두었다.
처음부터 무쏘를 이렇게 오래 탈 생각은 아니었다. 그가 고백했다. “그동안 이 차와 여행하면서 켜켜이 쌓인 추억은 제 젊은 시절의 모든 것입니다. 아버지와 동생의 추억도 있지요. 차엔 캠핑 장비와 함께 그림 도구를 항상 싣고 다녔습니다. 차가 서면 사진을 찍고 스케치를 했습니다. 그때의 경험과 영감이 지금의 작품 활동에 큰 도움을 주고 있어요.”
그는 키네틱 아트를 주로 하는 미술 작가다. 입체 조형물과 드로잉으로 소통의 가치를 표현한다. 자동차는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고 작품은 다시 그의 자동차에 새로운 영감을 선사한다. 그에겐 무쏘 말고도 구형 코란도의 프레임을 기반으로 직접 제작한 네바퀴굴림 SUV ‘선데이’가 있다.
김 작가가 타는 무쏘의 생명 연장 비결은 ‘한결같은 관심’이다. 그는 차의 내면을 진중하게 들여다보며 대화를 나눈다. 우선 제작 배경과 역사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차의 구조와 캐릭터를 모두 소화하고 차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를 넘지 않는다. 운전은 서두르지 않는다. 그는 즐거운 드라이브란 탑승자 모두가 편안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이야기를 이었다. “이 차가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 이유 중 다른 하나는 엔진입니다. 차는 1994년에 나왔지만, 엔진은 1970년도의 것을 얹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거뜬합니다.” 무쏘엔 메르세데스 벤츠의 2.9ℓ 직렬 5기통 디젤 엔진(OM-662)이 탑재됐다. 김 작가가 차를 샀을 때까진 엔진이 직수입됐다. 그러다 1995년부터 쌍용자동차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라이선스를 얻어 창원 공장에서 직접 엔진을 조립했다. 변속기는 보그워너의 5단 수동변속기를 달았다.
22년 동안 큰 고장은 없었다. 서스펜션, 엔진, 변속기 모두 그대로다. 오히려 정비공이 실수로 캠축을 망가트리고 다른 부동액을 넣어 고생한 적이 있다. ‘한결같은 관심’은 ‘한결같은 관리’로 이어졌다. 예를 들어 소모품은 교체 시점이 10% 남았을 때 미리 교환해주고 타이어와 휠얼라인먼트는 항상 좌우 균형을 맞춘다. 편의를 위해 열선이 깔린 현대 다이너스티의 시트와 모모의 우드 스티어링휠로 바꾼 것 말고는 처음 그대로다. 매년 정기적인 배기가스 검사도 문제없이 통과한다. 그는 지금도 작업실 출퇴근을 이 22년 지기 친구와 함께하고 있다.
“차는 관리만 잘하면 계속 탈 수 있습니다. 한계가 없지요. 지금 잘 버텨주고 있는 저 엔진이 고장 난다고 해도 부품만 바꿔주면 다시 멀쩡히 잘 움직일 겁니다. 그게 바로 기계의 매력입니다.” 사실 김 작가에게 주행거리는 중요하지 않다. 최소한 그가 살아있는 동안엔 ‘무소의 뿔처럼’ 무쏘를 가져갈 것이다. 위대한 유산의 탄생이다.
조두현 기자 joec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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