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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코알라와 촛불 시민

입력
2016.12.2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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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코알라는 묘한 매력을 주는 동물이다. 사진만 봐도 저절로 호감이 생긴다. 맨날 나무에 매달려서 반쯤 졸고 있는 모습이 귀엽다. 배에 있는 육아낭에서 새끼를 키우는 유대류라서인지 새끼를 지극히 사랑하는 어미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귀엽다고 가까이 다가섰다가는 악취에 질겁하게 된다.

코알라는 유대류 버전의 나무늘보다. 발은 물체를 잡기 좋게 생겨서 항상 나무에 매달려 있다. 게으르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보금자리를 만들지도 않지만 나무늘보만큼이나 꼼짝하지 않는다. 하루에 스무 시간을 잔다. 왜 이렇게 자는 걸까. 뭐, 스무 시간을 자도 사는 데 문제가 없으니 잠을 많이 잘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궁금한 것도 많을 텐데 나무 위에서 잠만 자는 게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해답은 코알라가 매달려서 졸다가 먹다가 하는 나무에 있다. 그 나무가 바로 유칼립투스. 코알라는 오로지 유칼립투스 잎만 먹고 산다. 평생 한 가지만 먹는다. 그런데 유칼립투스에는 알코올 성분이 있다. 그러니까 코알라는 하루 종일 취해 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코가 아주 큰 게 꼭 술 취한 코주부 영감처럼 보인다. 덕분에 가끔 나무에서 떨어진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나무에서 떨어진 코알라는 흙에서 염분을 섭취한다.

코알라는 평생 유칼립투스를 먹고 사는데 다른 동물들은 유칼립투스를 먹지 못한다. 유칼립투스 잎은 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쥐에게 유칼립투스 잎을 먹이면 금방 죽을 정도다. 그렇다면 코알라는 어떻게 유칼립투스만 먹고 살까. 자기 힘이 아니다. 장 안에 있는 미생물의 힘으로 산다. 동물은 섬유질을 소화하는 효소를 10여 가지 정도만 만들어 낸다. 하지만 장내 세균은 수천 개의 섬유분해효소를 분비한다.

과학자들은 쥐에게 코알라의 장내 세균을 이식해 보았다. 실험쥐들은 유칼립투스 잎을 먹고도 살아남았다. 흥미롭게도 쥐에게 처음에는 유칼립투스 잎을 아주 조금 주다가 유칼립투스의 양을 조금씩 꾸준히 늘렸더니 쥐의 장내 세균 유형이 코알라의 장 속과 비슷해졌다. 아무래도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던 세균들은 코알라를 자신의 거처로 선택한 것 같다.

그렇다면 코알라의 새끼는 어떨까. 갓 태어난 코알라 새끼의 뱃속에 복잡한 장내 세균이 처음부터 있을 리는 만무한데, 코알라는 새끼에게 장내 세균을 어떻게 전달할까. 코알라는 유대류다. 처음 태어날 때는 몸무게가 1g도 안 된다. 털이 나지 않은 미숙아로 태어난다. 모든 유대류가 그렇다. 우선 배에 있는 주머니인 육아낭 속에서 젖을 빨면서 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코알라의 육아낭은 거꾸로 달렸다. 육아낭 바깥으로 고개를 내민 캥거루 새끼가 어미와 똑같은 세상을 보는 것과는 달리 코알라 새끼는 육아낭에서 고개를 내밀면 어미 엉덩이가 보인다.

코알라는 젖을 뗄 무렵이 되면 어미의 항문에 입을 대고 어미의 똥을 먹는다. 똥 속에는 반쯤 소화된 유칼립투스 잎이 들어 있다. 이런 식으로 유칼립투스 먹는 연습을 시작한다. 그런데 그 똥에는 어미의 장내 세균이 들어 있다. 어미 똥을 통해서 유칼립투스 잎에 대한 맛을 알게 될 무렵이면 새끼의 장 속에도 유칼립투스의 독성을 제거하고 소화시키는 세균이 풍성해진다. 어미 똥을 잘 먹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육아낭에서 나오는 일이 잦아지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몸집이 불어서 더 이상 육아낭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 후에도 어미 등에 여섯 달 정도 매달려 살면서 실제 유칼립투스 잎을 먹는 연습을 한다.

우리가 체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많은 경우 장내 세균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비만도 그러하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말은 100% 거짓말이다. (2016년 최고의 책은 김탁환 작가의 소설 ‘거짓말이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상당히 많이 먹는데도 불구하고 살이 찌지 않는 사람이 있다. 장 속에 살고 있는 특정 세균이 효소와 호르몬 분비를 조절해서 체중과 혈당을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장 속에도 세균 종의 다양성이 필요하다. 어떻게 좋은 균만 갖고 살겠는가, 나쁜 균들도 많을 것이다. 좋은 균과 나쁜 균의 힘의 균형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난 24일 성탄절 이브에 광화문에는 겨우(!) 60만 명의 시민이 나왔다.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규탄 시위에 가장 많이 나왔을 때가 20만 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숫자이지만, 광화문에 172만 명, 전국에 232만 명이 모인 12월 3일을 경험한 후에는 60만 명 정도는 너무 적어 보일 정도다.

촛불 시민들은 혼자 나오지 않는다. 가족과 함께 나오고 동창과 함께 나오고 교인과 함께 나온다. 혼자 나온 사람들도 금방 친구를 찾아낸다. 왜 그럴까. 서로 격려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우리는 속아서 살았다. 세상에서 우리와 같은 시민은 소수라고 속았던 것이다. 아니었다. 우리가 절대다수였다. 민주주의가 훼손된 것이다.

지난 총선 때 20, 30대의 투표율이 불과 몇 퍼센트 올랐을 뿐인데 여소야대가 되었다. 야당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었다. 그러자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되자 안전하고 편리하게 촛불시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안심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게 되었다.

우리는 이번에 이길 것이다. 헌재는 탄핵을 인용할 것이고 그동안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처벌받기는커녕 권력을 행사하고 온갖 이권을 나눠 가졌던 법조계 천재들은 감옥에 갈 것이다. 하지만 싸움은 오래 계속될 것이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자신감이다. 코알라가 새끼에게 장내 세균을 전달하기 위해 똥을 먹이는 것처럼 우리도 자녀들에게 수십만 개의 촛불을 온전히 보여주어야 한다. 12월 31일 저녁 전국 곳곳의 광장에 나가야 하는 이유다. 나는 가족과 함께 광화문에 간다. 송박영신(送朴迎新).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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