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인사전횡ㆍ직권남용 혐의 증거 확보 목적”
재직기간 업무기록ㆍ서류 등 확보… 최순실 국정농단 파악 증거 입수 땐
청문회 진술에 위증죄 적용 가능… 재단 설립 협력 단서 나올 수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가장 어려운 상대’로 꼽았던 김기춘(77)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향해 드디어 칼을 꺼내 들었다. 삼성그룹과 관련한 최순실(60ㆍ구속기소)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수사에 이어 ‘김기춘 의혹’을 두 번째 타깃으로 정한 것이다. 그 동안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가담자로 거론돼 왔지만 모르쇠로 일관해 왔던 그의 방어막을 특검팀이 어떻게 뚫을지 주목된다.
26일 김 전 실장의 자택은 물론, 조윤선(50)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집무실과 주거지, 문체부의 문화융성 정책 관련 부서 등 10여곳에 대한 특검팀의 동시다발 압수수색은 사실상 김 전 실장에 대한 전면적인 선전포고로 읽힌다. 앞서 진행된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에서도 그에 대한 의혹들이 쏟아졌지만, 검찰은 강제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단순한 의혹을 넘어선, 범죄혐의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특검팀 출범 초기 한 관계자는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남긴 비망록 등을 토대로 수사하면 된다”고 말했었다. 이렇게 보면 이날 압수수색도 예고된 수순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실장에 대한 특검팀의 수사 초점은 먼저 현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계 인사 9,473명의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 작성’에 맞춰져 있다. 김 전 실장은 2014년 10월 김희범 문체부 1차관에게 “1급 실ㆍ국장 6명의 일괄 사표를 받으라”고 지시한 혐의(직권남용)의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이와 관련,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퇴임(2014년 7월) 직전 청와대 김소영 비서관이 넘겨준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며 그 출처로 청와대 정무수석실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을 지목했다. 당시 정무수석은 조 장관, 국민소통비서관은 이날 사표가 수리된 정관주 문체부 1차관이었다.
유 전 장관은 ‘주도자’에 대해 “합리적 의심으로는 김 전 실장일 것”이라고 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적용하라는 청와대 지시를 자신과 문체부 1급 간부들이 거부하자 그 명단이 김종 전 2차관을 거쳐 청와대에 보고됐고, 김 전 실장이 ‘사표를 받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전 실장에게 ‘찍힌’ 6명 중 3명은 공직을 떠났다. 특검팀은 27일 정관주 1차관을 소환 조사한다.
이러한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박근혜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고 유 전 장관은 주장했다. 그는 “블랙리스트 적용 지시에 대해 2014년 1월 대통령을 면담해 항의하자 ‘(반대파 포용) 소신대로 하시라’는 대답을 들었다”며 “세월호 참사 이후인 같은 해 6월, 관련 지시를 공식 문서 형태로도 받아 대통령에게 또 항의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고 했다. 이날 조 장관은 “해당 리스트를 본 적이 없고,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김 전 실장 수사가 단지 이 정도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특검팀은 이날 그의 자택에서 청와대 재직 기간(2013년 8월~지난해 2월) 업무 관련 기록과 각종 서류 등을 확보했다.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그가 본인 주장과는 달리, 최씨의 국정농단을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될 경우 그에게는 직무유기 혐의는 물론, 국회에서의 위증죄 등까지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이날 특검팀은 그의 자택 2층에 있던 금고에서 현금 뭉칫돈도 압수했다. 돈의 출처를 따라가다 보면 또 다른 범죄혐의가 포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문체부 인사 전횡’ 사건을 파헤치다 보면 이번 사태의 출발점인 미르ㆍK스포츠재단 의혹과 김 전 실장의 연결고리를 잡게 될 수도 있다. 최씨가 측근인 김 전 차관 등을 통해 문체부를 마음대로 주물렀던 정황으로 보아, 이 사건은 두 재단의 소관부처인 문체부를 길들이려는 ‘사전 정지작업’이었을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았던 ‘왕실장’(김 전 실장)과 ‘비선실세’(최씨)의 교류 사실은 물론, 역학관계까지도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다는 얘기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 세 번째 위기 몰린 김기춘… 또 다시 법은 그의 편일까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