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2.27
1978년 12월 27일 스페인이 국왕 위에 헌법을 둔 입헌군주국이 됐다. 1936~39년 스페인내전과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의 군사독재로부터 40여 년 만에 벗어난 거였다. 그 심란한 역사를 큰 잡음과 희생 없이 민주주의의 궤도로 전환한 정치의 중심에 전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1938~)가 있었다.
16세기 대항해시대를 이끈 주역도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의 제왕” 펠리페 2세 등 스페인 왕실과 가톨릭 교회였다. 왕실 군대와 교회는 아프리카와 중ㆍ남미를 휘어잡던 시절 이래 내전과 독재의 스페인 정치를 떠받친 물리력과 물질적ㆍ정신적 기둥이었다. 프랑코가 등장한 것은 1930년대 제1공화정 시기. 스페인 육사를 나와 32세에 장군이 된 그는 36년 총선거에서 좌파 인민전선파가 승리하자 쿠데타를 일으켰다. 3년 여의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그는 유일 정당 팔랑헤(Falange, 49년 민족해방당으로 개칭)당의 당수이자, 총독(국가원수 겸 수상)으로 이후 38년간 독재했다. 2차 대전 초기 추축국의 일원으로 연합국에 맞서다가 43년 독일이 수세에 몰리자 재빨리 중립노선으로 발을 뺌으로써 종전 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스페인은 국제적으로 고립됐다. 냉전 덕에 10년 뒤인 55년,유엔 가입을 승인 받았지만, 스페인은 20세기 유럽의 마지막 파시스트 국가라는 오명을 견뎌야 했다.
69년 프랑코가 31세의 왕족 후안 카를로스 1세를 후계자로 낙점한 것은 권력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정적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카를로스 1세는 프랑코 사후 국왕에 즉위, 더디지만 확고한 민주화 정책을 단행했다. 그는 군부와 교회 중심의 극우 프랑코주의자들과 좌파 반군, 특히 바스크ㆍ카탈루냐의 분리독립파의 틈바구니에서 아돌포 수아레스 내각을 앞세워 정치개혁 입법을 단행했고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양원제 의회를 출범시켰다. 정치범 사면, 비밀경찰 해산, 군부 견제, 노조 합법화…, 그리고 헌법 제정. 81년 프랑코파 군부가 의회를 점거한 채 구체제 복원을 요구하는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그들을 설득해 무혈 진압한 것도 카를로스 1세였다.
뮌헨 올림픽 요트 국가대표 선수로 출전할 만큼 활동적이던 그는 말년의 코끼리 사냥과 호화 여행, 자녀의 공금횡령 등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2014년 6월 전격 퇴위, 아들 펠리페 6세에게 왕권을 넘겼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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