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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두 번째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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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두 번째 눈이 내렸다

입력
2016.12.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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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것은 마치 첫 눈이 내린 것과 같다(It’s like the first snowfall).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9년 반 만에 역사적 금리인상을 단행할 무렵, 한 미국 칼럼니스트는 그 상황을 첫 눈에 비유했다. 첫 눈(0.25%포인트 인상 1회) 자체만으로 교통이 두절되거나 눈사태가 나거나 동사자가 속출하는 일은 없지만, 첫 눈이란 모름지기 강설량이 미미해도 앞으로 ‘엄혹한 겨울’이 시작될 것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세계의 돈이 금리가 높은 미국으로 다시 빨려가, 변방의 돈줄이 얼어붙는 ‘돈의 겨울’ 말이다.

그렇게 겨울은 막이 올랐고, 올해 12월 14일 두 번째 눈(제2차 금리인상)이 내렸다. 첫 눈과 두 번째 눈 사이 간격이 길어, 마치 첫 눈 같은 두 번째 눈이었다. 아직 돈줄이 얼어붙을 정도는 아니다. 겨울은 겨울인데 얇은 옷으로 어느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가짜 겨울과 같은. 하지만 기상예보는 본격적 겨울이 곧 시작된다고 경고한다. 내년엔 많으면 세 번 이상 눈(금리인상)이 내릴 것이라 하니, 이제 곧 돈 값(금리)이 오르고 돈이 얼어붙는 추위가 시작될 모양이다.

겨울인 듯 겨울 아닌 1년이 흐르는 동안, 한국은 어떤 겨울나기 준비를 했나? 첫 눈이 내린 뒤 누구나 계절이 겨울로 바뀌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우린 겨울을 버틸 아무 준비도 마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상 가장 낮은 금리 덕분에 질펀하게 벌였던 ‘돈 파티’의 숙취가 가시지 않은 상황인데, 덜컥 겨울이 왔다.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 이자 내는 이의 비명소리가 높아질 게 뻔한데,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빠르다. 가계가 은행빚을 다 갚으려면 1년 2개월 소득을 몽땅 쏟아 부어야 한다(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 116.5%). 내년 가계부채는 더 폭증해 1,500조원 돌파가 유력하다. 경고 사인이 쏟아지지만, 이 정부는 부동산 호황이 가져다 준 달콤한 선물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이 풀린 채 그대로다.

그간 정부는 금리인상에 준비되어 있다고, 컨틴전시 플랜(비상대책)이 마련돼 있다고 여러 번 공언해 왔다. 하도 준비를 잘 하고 있다고 하니 얼마 전만 해도 그 말을 그대로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와 한진해운 사태를 목격한 이제는 그 말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믿으라 말해 왔던 그 ‘정부’의 가장 상단은, 알고 보니 당최 믿지 못할 이들의 집합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위에는 시녀(관계가 반대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에게 국정을 맡기고 엉뚱한 데 정신을 팔았던 국가수반, 그 옆에는 나라경제 설계도를 그릴 생각은 않고 비선실세 돈을 수금하는데 열을 올렸던 수석비서관이 있었다. 후임자가 지명되자 “저는 나갈 사람”이라며 노래를 부르고 다닌 경제장관도 있었다(결국 그는 나가지 못했다). 그들이 바로 ‘겨울 준비’를 공언한 세력의 핵심이다.

그들이 안심을 외치는 사이, 한국 경제는 두 번째 눈이 내린 지금까지 변변한 겨울 옷도 아직 마련하지 못했다. 몇 개 방한용품(부동산 및 가계부채 억제대책)을 사 두긴 했다. 하지만 전임 부총리가 ‘여름옷, 겨울옷’ 비유를 하며 억지로 입혀 둔 나풀나풀 여름옷은 그대로 입은 채, 장갑 하나, 스카프 하나만 두르고 한데에 서 있다. 겨울엔 삼한사온도 이상고온도 있다지만, 삭풍이 몰아치고 기온이 급전직하하는 시기가 분명히 온다.

며칠 전 금융당국은 내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대응계획을 마련하겠다는 얘기를 했다. 이미 지난해 나왔어야 할 얘기다. 우리는 과연, 그들을 믿고, 이 겨울을 날 수 있을까? 이런 것마저 각자도생을 해야 한다면, 그런 국민 된 신세 참 서럽지 아니한가.

이영창 경제부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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