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나는 / 뉴턴의 사과처럼 /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 심장이 /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 첫 사랑이었다.”
가을 햇살을 머금고 따사롭게 웃는 소녀의 모습에 남자주인공의 마음이 흔들리던 순간, 나지막한 목소리로 내레이션이 흐른다. 10일 방영된 tvN 드라마 ‘도깨비’ 4회 엔딩 장면에 실린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이다. 주인공 김신(공유)이 읽고 있던 책장 위로는 빨간 단풍잎 하나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섬진강 시인’으로 알려진 김용택 시인이 101편의 시를 골라 엮은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도깨비’ 제작사 화앤담픽처스 관계자는 “김은숙 작가가 평소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다독가”라며 “책에서 이야기의 영감을 얻기도 하고 눈여겨봤던 책을 드라마의 소재나 모티브로 활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도깨비에 실린 시도 김 작가가 직접 골라 대본에 반영했다”고 한다. 원작자와도 사전 협의를 거쳤다. 별도의 저작권료는 지불하지 않는다.
김 작가는 책을 극 전개의 모티브나 복선으로 종종 활용해 왔다. ‘도깨비’에서처럼 책의 한 구절이 대사로 담기거나, 주인공이 책을 보고 있는 장면이 자주 그려졌다. SBS ‘시크릿 가든’(2011)에서 김주원(현빈)이 즐겨 읽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남녀주인공의 영혼이 맞바뀐다는 설정과 맞물리며 향후 전개를 암시하는 역할을 했다. SBS ‘상속자들’(2013)에서 김탄(이민호)이 읽던 ‘위대한 개츠비’도 신분과 재력 차이로 인한 남녀주인공의 험난한 로맨스를 예고하는 설정으로 해석됐다. 그리고 이 책들 모두 드라마의 인기 덕에 화제에 올랐다.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도 서점가를 달구고 있다. ‘도깨비’에 소개된 직후 이 책은 7일부터 13일까지 집계한 교보문고 종합베스트셀러 5위에 올랐고, 14~20일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에선 1위에 올랐다. 시 ‘사랑의 물리학’이 최초 수록됐던 김인육 시인의 2012년 출간 시집도 제목을 ‘사랑의 물리학’으로 바꿔 최근에 개정판이 다시 나왔다. 출판계는 ‘도깨비’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사실 ‘도깨비’에 등장한 책은 PPL(간접광고)이다. 책이 극 전개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서 가구나 음료 같은 다른 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거슬릴 뿐이다. ‘어쩌면 별들이…’를 출간한 위즈덤하우스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사와 협의해 PPL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 책의 PPL 금액에 대해선 당사자들이 말을 아끼고 있지만, 출판 관계자들은 최소 2억~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작가 및 배우의 인지도, 방송 시간대, 노출 횟수 등을 고려해 금액대가 정해지는데 ‘도깨비’의 경우 모든 조건이 톱클래스에 속하기 때문이다. 한 출판 관계자는 “요즘엔 도서 PPL이 자동차나 가전제품처럼 일반적인 PPL 제품 중 하나로 인식돼 있다”며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있는 대형 출판사를 중심으로 PPL을 활발히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능프로그램의 경우 PPL에 맞춰 구성과 대본 작업이 이뤄지기도 한다. 이 관계자는 “모든 PPL이 홍보 효과를 보는 건 아니지만 ‘도깨비’처럼 잘 활용되면 위축된 출판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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