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그림책에 대한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금도끼와 호랑이와 빨간 망토가 어지럽게 뒤섞인 기억을 곰곰이 되짚다 보면, 그 중 상당수가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동화였음을 깨닫는다. ‘이토록 어여쁜 그림책’(이봄)은 그림책 전문가 4인이 권하는 44권의 그림책 이야기다.
시인이자 그림책작가인 이상희, 일간지 기자 최현미, 출판평론가 한미화, 동화작가이자 아동문학평론가인 김지은씨는 그림동화책과 그림책의 차이를 강조한다. 동화에 삽화를 그려 넣은 그림동화와 달리, 그림책은 그림을 가지고 건네는 이야기다. 언어와 시대의 장벽을 뛰어넘는 그림의 힘은 모두에게 평등하며, 저자들은 언젠가부터 그림책과 작별한 어른들에게 그 힘을 각별히 일깨우고 싶어한다.
레오 리오니의 ‘저마다 제 색깔’의 주인공은 카멜레온이다. 상황에 따라 휙휙 색깔이 바뀌는 카멜레온은 늘 호기심의 대상이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특성이 못마땅하다. ‘나도 나만의 색깔이 있으면 좋겠어’. 그러나 이파리에서 물들어온 푸른 색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바뀌고, 겨울에는 다시 죽음의 색으로… 카멜레온은 주변의 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던 그에게 다른 카멜레온이 나타나 기막힌 해법을 제안한다. “우리 둘이 함께 있으면, 가는 데마다 색깔이 변하더라도 우리 둘은 언제나 같은 색깔일 거야.”
빨간 땡땡이 버섯 위에 나란히 앉은 두 빨간 땡땡이 카멜레온 그림은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에 대해 무한한 성찰의 장을 열어놓는다. “자기 색깔을 사랑하는 자만이 진정한 짝을 얻으리라”는 작가의 해석은 그 중 가장 낭만적이다.
맥 바넷과 존 클라센의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은 외톨이 애너벨이 털실 상자를 발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털실로 스웨터를 짜주는 이야기다. 쓸데없는 일 한다고 비웃는 네이트, 특이한 복장을 나무라는 선생님, 몸집이 큰 팬들턴 아저씨와 작은 루이스 아저씨까지 모두 애너벨의 스웨터를 받지만 털실은 줄어 들지 않는다. 강아지, 고양이, 나무, 지붕, 벽까지 애너벨의 털실로 덮인 그림은 포근한 웃음을 자아낸다.
저자는 이 책을 직장을 그만 두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 떠나는 친구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권한다. “너도나도 황금의 무게를 환산하는 이 냉동고 같은 세계 안에서 내가 오늘 얼어 죽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나를 위해 묵묵히 스웨터를 짜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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