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문학을 전공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에세이를 통해 삶의 ‘속도’보다 ‘방향’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농구계 대표적인 ‘비주류’ 추일승(53) 고양 오리온 감독 또한 방향에 초점을 맞춘 지도자다. 프로 지도자로 남들보다 첫 우승이 늦었지만 그의 별명대로 ‘소’처럼 꾸준히 쉬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그 결과 역대 네 명 밖에 밟지 못한 프로 통산 300승의 금자탑도 쌓았다.
추 감독은 올해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이브날인 24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부산 KT전에서 615경기 만에 300승을 거둔 데 이어 25일 같은 장소에서 펼쳐진 울산 모비스전 마저 기분 좋은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301승째를 따낸 추 감독은 “300승 기록보다 현재 팀 상황이 안 좋기 때문에 정규리그를 굴곡 없이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라면서도 “‘나도 이제 300승을 했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감독은 하면 할수록 참 어려운 자리인 것 같다”고 말했다.
300승 이상을 수확한 5명 중에 ‘비주류’ 출신 사령탑은 추 감독이 처음이다. 농구계에서 흔히 말하는 ‘주류’는 많은 프로 선수를 배출한 연세대, 고려대, 중앙대 등을 일컫는다. 통산 551승과 362승을 수확한 유재학 모비스 감독, 신선우 전 KCC 감독은 연세대, 전창진(426승) 전 KGC인삼공사 감독과 김진(402승) LG 감독은 고려대 출신이다. 반면 추 감독은 농구부가 사라진 홍익대 출신이다.
5할 승률 미만 감독 역시 추 감독(0.488)이 유일하다. 약체 팀들을 맡은 영향도 있지만 2003년 재정 난에 허덕이던 코리아텐더 푸르미 지휘봉을 잡고 처음 프로에 뛰어든 뒤 팀을 인수한 KTF를 2004~05시즌부터 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 지도력을 발휘했다. 특히 2006~07시즌에는 챔피언 결정전까지 올라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모비스와 7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KTF 감독에서 물러나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2011년부터는 이전 4시즌 동안 10-9-10-10위에 머물던 오리온을 맡아 2015~16시즌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당시 우승 후 추 감독은 “세상에는 연세대나 고려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주류”라고 강조했다.
‘농구 학자’로도 유명한 추 감독은 홍익대와 한국체대에서 석사학위, 동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프로농구(NBA) 전 LA 레이커스 델 해리스 감독의 ‘위닝 디펜스’를 번역 출간하기도 했다. 올해에는 자신의 지도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코칭 에세이 ‘심장을 뛰게 하라’를 펴냈다.
추 감독은 “책을 내는 것은 예전부터 생각했던 일인데 그래도 우승은 하고 내야 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했다. 출판사에서 농구 팬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더 많이 읽을 수 있도록 조직 내 인간 관계나 리더십 관련 내용을 추가해달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김지섭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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