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가운데 계획대로 착착 맞아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튀어나와 분루를 삼키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은 호재에 환호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국산차와 수입차를 합쳐 200여 종의 자동차가 출전한 올해 자동차 시장도 변화무쌍한 경주를 거듭한 끝에 결승선에 다다랐다. 한해 성적표를 받아 들어야 하는 완성차 업체들에게는 희비가 엇갈리는 연말이다.
아우디ㆍ폭스바겐 추락(墜落)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시작된 폭스바겐 디젤차 배출가스 조작 사태는 올해 국내에서 정점으로 치달았다. 검찰 수사로 아우디와 폭스바겐 차량들의 소음ㆍ배출가스 인증서류 조작이 드러나자 환경부는 지난 8월 A6 골프 티구안 등 인기 모델을 포함한 두 브랜드의 32개 차종, 8만3,000여대의 인증을 취소했다. 지난해 11월에도 배출가스 조작으로 12만6,000대의 인증이 취소된 바 있어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올해 사실상 개점휴업이나 마찬가지였다. 판매중단의 영향으로 아우디의 1~11월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4.4%, 폭스바겐은 60.2%가 줄었다. 그나마 인증이 취소되지 않은 차량 재고마저 소진된 후엔 폭스바겐의 판매량은 제로(0)에 수렴했다.
배출가스 조작 파문에 판매금지
폭스바겐ㆍ아우디 신뢰도 바닥에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현금 보상을 하면서도 국내 고객은 외면했고, 결함 시정(리콜)도 1년이 넘도록 질질 끌어 비난 여론도 거셌다.
리콜 조건을 놓고 환경부와 막바지 협의 중인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내년 2월 20일부터 전 고객 27만여 명에게 100만원씩의 혜택을 주는 ‘위 케어 캠페인’을 실시할 계획이지만 한번 떠난 마음이 돌아설 지는 미지수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에 2016년은 사상 최악의 해다.
수입차ㆍ현대차 후진(後進)
베스트셀링카 톱10에 꾸준히 5,6개 차종을 올렸던 아우디ㆍ폭스바겐의 몰락으로 수입차 판매량도 뒷걸음질쳤다. 1~11월 수입차 신규등록은 20만5,162대로 지난해(21만9,534대) 대비 6.5% 감소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는 올해 연간 신규등록을 지난해에 비해 6.5% 줄어든 22만8,000대로 예상하고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입차의 첫 역성장이다.
수입 디젤차 등 판매 뒷걸음질
현대차 내수 점유 40% 무너져
지난해까지 무섭게 질주한 수입 디젤차도 브레이크를 밟았다. 1~11월 신규등록 수입차 중 디젤차 비중은 59.5%로, 지난해(68.9%)보다 9.4%포인트 줄었다. 디젤차가 빼앗긴 시장 점유율은 가솔린차(27.1%→33.5%)와 하이브리드차(3.8%→6.9%)가 가져갔다.
내수시장의 독보적 1위 현대자동차도 힘겨운 1년을 보냈다. 지난해 처음 내수 점유율 40%가 무너진 데 이어 노조 파업이 벌어진 지난 9월에는 점유율이 3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지난달 등판한 신형 그랜저가 막판 저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지난해 연간 점유율(39%)을 사수하긴 어려워 보인다. 아이오닉과 신형 i30 등 기대주들의 성적이 신통치 않은데다 주력 차급으로 부상한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없었다는 게 부진의 늪에 빠진 이유다.
만년 2인자들 질주(疾走)
기아차 하이브리드 니로 선전
1등=BMW공식 7년 만에 무너져
하이브리드차는 당초 현대차 아이오닉 하이브리드와 도요타 4세대 프리우스의 라이벌전이 점쳐졌지만 기아차 니로라는 복병이 등장했다. SUV와 하이브리드의 장점이 접목된 니로는 지난달까지 아이오닉 하이브리드(6,916대)보다 3배 가까이 많은 1만7,081대가 팔렸다. 니로는 전체 친환경차 중 연간 판매량 1위 등극을 앞두고 있다.
수입차 중에서는 렉서스와 랜드로버의 약진이 눈부셨다. 1~11월 지난해와 비교해 34.9% 증가한 9,170대를 판 렉서스는 ‘연 1만대 클럽’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하이브리드차 ES300h가 렉서스 전체 판매량의 절반이 넘는 5,257대를 혼자 책임졌다. 올해 60%가 넘는 성장률을 보인 랜드로버는 지난 22일 연 1만대 판매를 달성했다. 2001년 국내에 진출한 랜드로버가 1만대 클럽에 가입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기존 질서에 균열(龜裂)
자동차 세계에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게 입증된 한 해다. 중형 최강 쏘나타가 무너진 것처럼, 경차의 지존 기아차 모닝(6만6,925대)은 한국GM 스파크(7만956대)에 일격을 당해 지난달까지 누적 판매량에서 2위로 밀려났다.
동생(기아차)이 형(현대차)보다 앞서가는 믿기 어려운 일도 벌어졌다. 지난달까지 버스와 트럭 등 상용차를 제외한 현대차의 승용차 판매량(42만9,029대)은 기아차(43만957대)에 뒤지고 있다. 사상 처음 승용차 연간 판매량에서 기아차가 현대차를 누를 가능성이 크다.
수입차 시장에서는 ‘1등=BMW’란 공식이 7년 만에 깨졌다. 신형 E클래스를 앞세운 메르세데스-벤츠가 지난달까지 5만718대를 판매해 4만2,625대에 그친 BMW를 올해 여유 있게 추월할 전망이다.
전기ㆍ자율주행차 등 힘찬 시동
새시장 질서 車산업 전체로 확산
기존 질서의 균열은 개별 차종을 넘어 자동차 산업 전체로 확산됐다. 이미 전기차 자율주행차 커넥티트카 등이 주류로 발돋움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업계 관계자는 “시기가 문제일 뿐 새로운 자동차들의 시대가 곧 열릴 것이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내년에는 변화의 폭이 훨씬 넓어지고 속도도 더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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