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한국 스포츠계에는 유난히 굵직한 일들이 많았다. 스포츠 덕분에 박수치고 웃을 일도 많았지만 체육계 근간이 흔들릴 만한 초대형 악재도 터졌다. 희망과 위기가 공존한 병신년 스포츠 10대 뉴스를 정리했다.

‘최순실 게이트’직격탄 맞은 체육계
병신년의 끝자락을 뒤흔든 ‘최순실 게이트’는 스포츠계를 초토화하다시피 했다. 최순실이 진두 지휘한 재단 K스포츠에 기업들이 자금을 출연했고, 최순실의 조카 장시호가 개입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는 정부 예산이 흘러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체육계 황태자라 불리던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은 최순실의 심복 역할을 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최순실 소유의 더블루케이는 스위스 업체 누슬리와 손잡고 평창올림픽 각종 임시 시설물 사업 수주에 뛰어들었으나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이에 앞서 최순실은 승마 선수인 자신의 딸 정유라를 위해 문체부 체육국장과 체육정책과장을 대통령이 ‘나쁜 사람’으로 찍어 공직을 떠나게 했다.

4회 연속 ‘톱10’ 리우 올림픽
한국은 8월6일 개막한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3개, 동메달 9개를 따내 208개 출전국(난민팀 제외)중 8위를 차지했다. 남녀 양궁에 걸린 금메달 4개(남녀 개인전ㆍ단체전)를 휩쓴 것을 필두로 사격 1개(남자 50m 권총), 펜싱 1개(남자 에페), 태권도 2개(여자 49kg급ㆍ여자 67kg급), 여자골프 1개를 합쳐 총 9개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한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부터 4개 대회 연속 ‘톱10’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당초 목표로 한 10개 이상의 금메달로 종합 순위 10위 안에 드는 ‘10-10’은 불발됐다. 한국은 기대했던 유도와 레슬링 등에서 금메달 사냥에 실패하며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특히 육상과 수영, 체조 등 기초종목에서는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 일부 종목에 집중된 메달 편향을 극복하지 못했고,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구기 종목에서도 부진해 아쉬움을 남겼다.

박인비의 116년 만의 올림픽 金
박인비(28ㆍKB금융그룹)는 리우 올림픽에서 세계 골프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남자는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이후 112년 만에, 여자는 1900년 파리 대회 이후 116년 만에 다시 선 올림픽 골프에서 박인비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8월18~21일 올림픽 골프 코스(파71ㆍ6,245야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최종합계 16언더파 268타를 기록했다. 톱랭커들이 불참한 남자 골프와 달리 여자는 세계랭킹 1위 리디아 고를 비롯해 브룩 헨더슨(캐나다), 시즌 5승의 에리야 쭈타누깐(태국), 미국의 자존심 스테이시 루이스 등이 총출동했다. 지난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던 박인비는 올림픽 금메달을 묶어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대업을 일군 유일한 선수가 됐다. 박인비는 지난 6월에는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에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 요건을 채우는 쾌거도 이뤘다. 역대 25번째이자 LPGA 최연소 명예의 전당 입성(27세10개월28일)이다.

한국양궁, 올림픽 최초 전 종목 석권
한국 양궁 대표팀은 올림픽 사상 최초로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에 걸려있는 금메달 4개를 싹쓸이했다.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 3개를 목에 건 것을 비롯해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2012년 런던 올림픽 등에서 금메달 3개씩을 따냈지만 전 종목 석권은 처음이었다. 김우진-구본찬(현대제철)-이승윤(코오롱엑스텐보이즈)은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브래디 엘리슨이 버틴 미국을 세트점수 6-0 완파하며 8년 만에 금메달을 되찾아왔다. 기보배(광주시청)-최미선(광주여대)-장혜진(LH)으로 이뤄진 여자대표팀은 결승에서 러시아를 5-1로 제압, 서울 올림픽부터 8연패의 위업을 이뤘다. 여자 개인전에서는 장혜진이 결승에서 리사 운루흐(독일)를 세트점수 6-2로 꺾고 새로운 스타 탄생을 알렸다. 가장 어려워 보였던 남자 개인전에서도 구본찬이 장샤를 발라동(프랑스)을 7-3으로 꺾고 금메달을 획득, 전 종목 석권의 숙원을 이뤘다.

유승민 ‘깜짝’ IOC 선수위원 선출
유승민(34)은 리우 올림픽 기간 중 한국인 두 번째로 임기 8년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되는 영예를 안았다. 유승민은 선수위원 투표 결과 후보자 전체 23명 중 2위를 차지해 상위 4명에게만 주어지는 IOC 선수위원에 선출됐다. 펜싱의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이 1위를 차지한 가운데 유승민이 뒤를 이었다. 3위는 수영의 다니엘 지우르타(헝가리), 4위는 육상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가 차지했다. 아무도 예상 못했던 유승민의 IOC 선수위원 당선은 한국인으로 두 번째다.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이 2008년 처음으로 당선 된 바 있다. 올림픽 선수들이 뽑는 IOC 선수위원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신설됐다. 하계 종목은 8명, 동계 종목은 4명 등 총 12명의 선수위원을 선출한다.

또 다시 고개 든 승부 조작ㆍ심판 매수
프로야구의 이태양(한화)과 문우람(상무), 유창식(KIA)과 이성민(롯데)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게 밝혀져 야구계는 충격에 빠졌다. 여기에 ‘소속 선수의 승부조작 가담 의혹을 알고도 은폐하고, 트레이드로 부당 이득을 취했다’는 혐의를 받은 NC 구단 관계자 두 명이 입건됐다. 또 진야곱(두산)은 이재학(NC)과 함께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베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고, 이 과정에서 두산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진실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해외원정도박 의혹을 꾸준히 받아온 안지만(전 삼성)은 불법도박 사이트 개설에 투자한 혐의로 유니폼을 벗었다.
K리그에서는 2013년 전북 현대의 스카우터가 2명의 심판에게 5차례에 걸쳐 모두 500만원을 준 사실이 적발돼 지난 9월28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프로축구연맹은 ‘승점 9 삭감’을 명령하고 벌금 1억원을 부과했다. 결국, 전북은 K리그 우승을 놓쳤다.

체육단체 통합과 이기흥 체육회장 체제 출범
2016년은 한국 스포츠에 엘리트 스포츠를 관장하는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주관하는 국민생활체육회가 하나로 통합된 역사적인 해였다. 엘리트와 생활체육 단체가 통합한 것은 1991년 국민생활체육회 창립 이후 25년 만의 일이었다. 지난해 3월 양대 체육 단체를 통합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1년 만인 올해 3월 통합체육회 법인 등기 절차가 마무리되면서 통합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대한체육회’로 명칭을 정한 통합체육회는 4월 초에 출범식을 열고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10월 열린 통합체육회장 선거에서는 이기흥 전 대한수영연맹회장이 초대 통합체육회장에 당선되면서 2021년 2월까지 한국 체육을 이끄는 책무를 맡았다.

울고 웃은 박태환… 부활 신호탄 쏘아 올려
박태환에게 2016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2014년 도핑 양성반응으로 인해 대표선수 자격을 두고 논란이 일었던 박태환은 18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징계 기간 국내 정규 규격(50m) 수영장을 쓸 수 없었다. 그는 국가대표 선발을 겸한 4월 동아수영대회에서 출전한 4종목 모두 A기준기록을 통과해 올림픽 출전 자격을 충족했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이중처벌’ 논란에도 국가대표 규정을 이유로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대표 발탁을 거부했고, 갈등을 빚던 박태환은 국내 법원과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판단으로 어렵게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 하지만 박태환은 리우올림픽에서 주 종목인 자유형 400m와 200m, 그리고 100m까지 모두 예선 탈락해 일찌감치 짐을 쌌다. 박태환은 5월 김종 전 차관으로부터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라는 협박과 회유까지 받은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절치부심한 박태환은 10월 전국체전에서 2개, 11월 아시아선수권(11월)에서 4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더니 12월에 열린 국제수영연맹 쇼트코스 세계선수권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대반전에 성공했다.

전북, 10년 만에 아시아축구 정상 탈환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는 10년 만에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전북은 아랍에미리트의 알 아인과 1, 2차전 합계 1승1무를 거둬2006년 이후 10년 만에 이 대회 정상에 섰다. 전북 최강희 감독은 2006년에 이어 전북에서 2번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2003년 시작된 이 대회에서 두 번 우승을 차지한 지도자는 최 감독이 처음이다. 최 감독은 2016 AFC 어워즈 ‘올해의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지도자가 이 상을 받은 건 2013년 FC서울을 이끌던 최용수 감독(현 장쑤 쑤닝)이후 3년 만이다. 전북은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도 역대 최다인 33연속경기 무패 행진을 기록했다.

프로야구 두산, 21년 만의 통합우승과 KS 2연패
프로야구는 ‘두산 왕조’의 시작을 알리는 시즌이었다. 지난해에 정규리그 3위로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쥔 두산은 올 시즌 김현수(볼티모어)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더욱 완벽한 팀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김태형 감독이 이끈 두산은 한국시리즈 2연패 및 1995년 이후 21년 만의 정규시즌ㆍ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판타스틱4’로 불린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22승)-마이클 보우덴(18승)-장원준(15승)-유희관(15승)은 정규시즌에 무려 70승을 합작했다. 두산은 KBO리그 최초로 한 시즌 15승 이상 투수 4명을 배출했다. 야수 쪽에서는 김재환과 오재일이 동시에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떼고 중심 타선에 자리 잡았다. 이 밖에도 포수 양의지를 중심으로 한 탄탄한 전력을 바탕으로 두산은 정규시즌을 93승1무50패(0.650)로 마쳤다.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승이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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