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 올해의 TV 스타들이 그랬다.
2016년 안방을 빛낸 스타들은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가 아니다.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돼 있더라’고 할 만한 벼락 스타도 없다. 실력이 있어야 운도 따른다고 했던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실력으로 증명한 이들이 시청자들의 찬사를 받으며 대세로 떠올랐다.
송중기부터 서현진까지… 인생작 만나 터졌다
상반기에 가장 돋보였던 스타는 단연 배우 송중기다. 군 제대 이후 김은숙 작가와 합작한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안방극장을 강타했다. 최고시청률이 38.8%(닐슨코리아 집계)까지 치솟았다. 강인한 군인정신과 뜨거운 인간미를 지닌 유시진 대위는 송중기의 연기 이력을 대표하는 인생 캐릭터가 됐다.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 등 유시진의 명대사가 회자된 것은 물론 “~하지 말입니다” 같은 군인 특유의 어투까지 유행했다. 중국 대륙까지 ‘송중기앓이’로 달아올랐다. 2014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SBS) 이후 잠잠하던 한류도 송중기로 인해 재점화됐다. 송중기 때문에 부부싸움을 했다거나 ‘태양의 후예’를 밤낮없이 보다가 급성 녹내장에 걸린 사연까지 소개될 만큼 파급력은 엄청났다.
여름엔 송중기가 휩쓸고 간 안방극장 맹주 자리를 배우 박보검이 넘겨받았다. KBS2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남장 내시와 사랑에 빠진 왕세자 이영 역을 맡아 큰 사랑을 받았다. 나날이 시청률이 치솟아 ‘보검 매직’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바둑기사 최택을 연기해 기대주로 떠오른 박보검은 첫 주연작인 ‘구르미 그린 달빛’을 성공시키며 연기력과 스타성을 모두 입증했다. 여기에 촬영장에서 칭찬이 자자했던 미담이 동료 배우들을 통해 전해지며 호감도가 더 높아졌다.
SBS 드라마 ‘질투의 화신’의 조정석도 빠지면 섭섭하다. 송중기와 박보검이 이상적인 남성상을 보여줘 인기를 끌었다면, 조정석은 구질구질한 현실 로맨스의 남자주인공을 연기해 환호를 이끌어냈다. 제 잘난 맛에 살던 방송사 기자 이화신이 질투에 눈이 멀어 혼자서 웃고 울고 애원하고 토라지고 분노하고 체념하면서 지질하게 망가져가는 모습이 조정석의 맛깔스러운 연기로 그려졌다. 그야말로 ‘원맨쇼’였다.
그리고 지금 한창 뜨거운 배우 공유를 얘기할 때다. tvN 드라마 ‘도깨비’는 방영과 동시에 공유의 대표작 목록 첫 줄에 새로이 올라갔다. 영화 ‘부산행’과 ‘밀정’으로 각각 1,000만 관객과 750만 관객을 연달아 불러모은 막강 흥행세를 안방에서도 이어가고 있다. 공유는 939년을 살아온 도깨비 김신의 회한과 생애 처음 경험하는 사랑의 감정을 쓸쓸한 눈빛과 진중한 연기에 담아내 호평 받고 있다. 2017년 새해도 ‘공유 시대’로 문을 열게 됐다.
남자배우들이 득세한 가운데 여배우 자존심을 지킨 배우 서현진의 부상도 눈여겨볼 만하다. 조연과 악역, 단막극과 일일극을 가리지 않고 성실하게 연기력을 쌓아온 서현진은 tvN 드라마 ‘또 오해영’으로 배우 인생 전환점을 마련했다. 방영 전까지 크게 기대를 받지 못했던 이 드라마가 예상 외의 인기를 끌었던 데는 상처를 겪고도 또 다른 사랑을 꿈꾸는 오해영을 매력 있게 그려낸 서현진의 연기가 큰 역할을 했다. 서현진은 시청률 20%를 웃도는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로 ‘또 오해영’이 그저 단순한 행운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아재열풍부터 음악대장까지, 예능이 키운 스타
올해 예능계는 ‘아재 전성시대’로 요약될 수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중견 예능인들이 ‘아재 개그’의 인기에서 비롯된 ‘아재 열풍’을 타고 새로이 부활했다. 이경규는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과 ‘낚방(낚시 하는 방송)’ ‘말방(말 타는 방송)’을 선보이며 젊은 시청자들과 소통했다. 김흥국은 지난해 MBC 예능프로그램 ‘세바퀴’에 출연했을 당시 조세호에게 “안재욱 결혼식에 왜 안 왔냐”며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조세호를 억울하게 만든 장면이 뒤늦게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면서 ‘예능신’으로 추앙 받기도 했다. 두 사람은 고유의 캐릭터와 시류가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재조명된 케이스다.
반면 박수홍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전으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며 뒤늦게 아재 스타로 떠올랐다. 반듯한 외모와 깔끔한 진행실력으로 교양프로그램에서 더 선호하는 MC였던 그는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감춰뒀던 끼를 분출하며 데뷔 20여년 만에 전성기를 맞았다. 40대 후반 나이에도 친구들과 어울려 클럽 나들이를 즐기는 그의 열정에 어머니는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지만 시청자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나이는 갱년기이지만 열정은 사춘기 못지않다는 뜻에서 갱년기와 사춘기의 합성어인 ‘갱춘기’라는 수식어로도 불린다. ‘미운 우리 새끼’ 출연 이후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받으며 ‘대세 중의 대세’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재발견 예능스타 중엔 양세형도 있다. SBS ‘웃찾사’와 tvN ‘코미디 빅리그’ 등 공개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갈고 닦은 순발력과 재치로 여러 예능프로그램에서 패널로 맹활약하다 올해 MBC ‘무한도전’에 입성했다. 지난 3월 정준하의 Mnet ‘쇼미더머니’ 오디션 도전기를 담은 ‘힙합의 신, MC 민지’ 편에 잠깐 등장한 이후 종종 게스트 형식으로 모습을 비추더니 어느새 고정멤버로 굳어졌다. ‘무한도전’에서 큰 화제가 됐던 드라마 특집 ‘2016 무한상사-위기의 회사원’ 편을 비롯해 ‘릴레이툰’과 ‘귀곡성’, 우주프로젝트인 ‘그래비티 제로’ 등에도 출연했다. 특유의 깐죽거리는 입담과 개구진 캐릭터로 다른 멤버들과 차별화되며 방송 10주년을 맞은 ‘무한도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홍수를 이룬 음악예능에서도 스타가 탄생했다. MBC ‘복면가왕’ 무려 9연속 ‘가왕’에 오르며 전무후무 기록을 세운 ‘우리동네 음악대장’(음악대장) 하현우다. 음악대장은 폭발적인 고음과 화려한 무대 매너로 첫 무대부터 시청자와 판정단을 압도했다. 자신의 주특기인 록 장르는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와 빅뱅의 ‘판타스틱 베이비’ 같은 힙합곡과 심수봉의 트로트곡 ‘백만송이 장미’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선보여 찬사를 받았다. 무대 밖에서는 뜻밖의 유쾌한 입담으로 반전 매력까지 선사해 인기가 더 높았다. 시청자와 판정단이 일찌감치 음악대장의 정체가 국카스텐 하현우라는 사실을 눈치 챘음에도 무대를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놔주지를 않아 하현우는 20주 동안 복면을 쓰고 있어야만 했다. ‘음악대장 열풍’ 덕분에 ‘복면가왕’은 ‘무한도전’을 제치고 예능프로그램 평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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