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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쳤네” 대신 “잘 키워라” 응원해 주세요

입력
2016.12.2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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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복지시설 ‘두리홈-마을’

국내에 드문 양육 지원기관

출산 전부터 3년 간

주거-양육-직업교육 등 도와

“미혼부와 달리 안 좋게 봐”

“자립 지원하니 90% 양육 선택”

김영은(가명ㆍ22)씨가 22일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 두리마을 내 공동육아방에서 보육교사가 돌봐 준 22개월 딸을 찾아오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김영은(가명ㆍ22)씨가 22일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 두리마을 내 공동육아방에서 보육교사가 돌봐 준 22개월 딸을 찾아오고 있다. 여성가족부 제공

김영은(22ㆍ가명)씨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12년 부모와의 갈등으로 집을 나와 고시원을 전전했다. 생활비는 웨딩홀 아르바이트 등으로 충당했다. 막상 집을 나오긴 했지만 외로움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남자친구는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

2014년 5월 덜컥 아이가 생겼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상황이 아니었던 남자친구는 “네가 낳고 싶으면 낳으라”라고 했을 뿐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 할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김씨는 “내가 아이를 키울만한 경제적 여건도 안됐고, 주변에 도움을 구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고 당시의 막막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하지만 김씨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쿵쾅거리는 아기 심장소리를 들으면 나쁜 마음을 먹을 수 없었다.

미혼모자 복지시설을 수소문했지만 입양보다 양육이 중심인 시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출산 한 달 전인 지난해 1월 구세군이 운영하는 두리홈을 찾아 입소할 수 있었다. 김씨는 “직접 양육을 하겠다는 마음이 커 구세군 기관을 선택했다”며 “거주시설은 물론이고 공동육아방 등이 있어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구세군 두리홈. 3층짜리 건물에 김씨와 같은 미혼모 3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구세군 두리홈은 일제시대인 1926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미혼모 복지시설로 올해 개원 90주년을 맞는다. 지자체 예산과 구세군에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두리홈이라고 불리는 1층에는 출산 준비 중이거나 출산한 지 3개월이 안 된 산모들이 거주하는 공간과 산후조리실이 있고, 두리마을로 불리는 2~3층에는 공동육아방과 거주시설, 교양 교육실 등이 있다.

두리홈은 출산 전부터 출산 직후까지 임산부 생활을 돕는 곳이다. 분만ㆍ무료 숙식을 필요로 하는 미혼 임산부가 이용할 수 있다. 입소 후 1년 간 생활할 수 있다. 두리마을은 미혼모가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곳으로 보육교사가 상주하는 공동육아방이 있고, 경제적 자립을 위한 교육도 진행한다. 입소 후 2년 동안 머무를 수 있다. 대기자가 있을 때 ‘자립 의지’를 감안해 입소를 결정한다.

김씨는 “두리홈에 머물면서 출산을 했고, 아이를 낳고 100일이 지난 뒤 어떻게 자립할 것인지 상담 받았다”며 “가죽공예에 관심이 많아 아이를 키우며 이곳에서 공예 기술을 익혔고, 올해 가죽공예 2급 자격증을 땄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가죽공예 공방에서 일하며, 문화센터 강사로도 출강한다.

두리홈에 따르면 최근 2년 동안 34명이 이곳에서 생활하며 전산회계 1급, 바리스타 2급, 피부관리사 등 각종 자격증을 획득했다. 15명은 취업에도 성공했다. 여운자 구세군 두리홈 사무국장은 “과거에는 미혼모들이 이곳에서 아이를 낳자마자 입양을 보내 산부인과냐는 비난도 받았다”며 “하지만 최근 양육ㆍ자립 지원에 중점을 두면서 이곳에 오는 미혼모 80~90%가 직접 양육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구세군 두리홈이 최근 역점을 두는 사업은 미혼모 인식개선사업. 지난해에는 미혼모들이 직접 연극무대에 올라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도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책임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객들로부터 갈채를 받기도 했다.

김씨는 “미혼부가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 사람들은 ‘책임감이 있다’고 말하지만, 미혼모는 ‘사고를 쳤다’는 식의 안 좋은 시선이 있다”며 “미혼부든 미혼모든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 응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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