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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쥐와의 전쟁’ 중…EU 규제에 손 묶인 당국

입력
2016.12.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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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쇼핑 거리 마레지구에 등장한 쥐. AFP
프랑스 파리의 쇼핑 거리 마레지구에 등장한 쥐. AFP

“39년 동안 일하면서 이런 상황을 겪어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프랑스 파리시(市)의 유해동물 관리 매니저 기예스 데모디스는 에펠탑 주변 샹드마르스 공원을 둘러보며 이렇게 말했다. 평소 같으면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할 공원이 임시 폐쇄된 가운데, 대신 들판 중간중간 자리를 점한 쥐떼만이 데모디스를 경악하게 한 것이다. 샹드마르스 공원뿐 아니라 시내 주요 녹지에는 쥐들이 밤낮 없이 등장해 음식을 탐하고, 파리의 유명 쇼핑거리인 마레지구에도 쥐들이 건물을 옮겨 다니며 행인들을 놀하게 하고 있다.

영국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세계적 관광지인 파리가 최근 늘어나는 쥐들로 인해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파리 인구보다 쥐의 수가 많을 만큼 개체수가 급증함에 따라 보건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대내외로 시 당국의 적극적인 조치만 기다리고 있으나, 유럽연합(EU)의 규제로 인해 강력한 방역법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당국은 속수무책으로 관광객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사람보다 쥐가 많은 ‘빛의 도시’ 파리

현재 파리 시내에는 최소 400만~최대 약 600만 마리의 쥐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3주마다 번식이 가능하고 6~9주면 성체가 되는 성장 속도 상 개체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결과다. 파리 인구가 230만여명인 것을 고려하면 쥐가 주민 수를 넘어선 것은 물론, 주민 1명당 최대 2.6마리의 쥐와 함께 사는 셈이다.

쥐떼가 소리소문 없이 급증하면서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주요 도시, 영국 등 유럽 전역으로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4세기 쥐들이 지중해 인근 국가들에 흑사병을 퍼뜨려 파리에서만 인구 3분의 1인 10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분석했다. 현재 파리를 뒤덮은 쥐는 150~200년 전 유럽에 등장한 갈색쥐(학명 라투스 노르베기쿠스)로 흑사병 확산의 원인이 된 곰쥐(학명 라투스 라투스)와는 다른 종이나, 여전히 살모넬라균이나 급성 열성 질환인 렙토스피라증 전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커지는 우려에 시 당국은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파리시는 쥐 잡기 운동을 개시하면서 12월 시내 곳곳에 친환경 쥐덫을 설치, 쥐 숫자를 줄이고자 시내 5개 공원을 임시 폐쇄했다. 시 당국은 비둘기나 쥐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캠페인을 전개하는 동시에 쥐들이 쓰레기통을 타고 올라가지 못하게끔 쓰레기통 디자인 개선작업도 진행 중이다.

쥐떼 출몰, 원인은 EU 규제

그렇다면 파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현상의 원인은 무엇일까. 파리시는 현재 시민과 관광객이 버리는 음식물이 쥐들을 유인하는 최대 요소라는 입장을 관철하고 있다. 쓰레기통 또는 길가에 빵과 과일 등 쥐가 먹을 만한 음식이 넘쳐나니 생존율도 높아지고 쥐덫도 소용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계 제1의 관광지인 파리에는 늘 관광객이 넘쳐났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다른 시점이 아닌 현재 이러한 재앙이 닥친 이유를 설명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선 유럽연합(EU)의 새로운 규제로 화살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파리 도시동물 과학기술 연구소(UASTI)의 장미쉘 미쇼 박사는 “쥐들이 다니는 지하 길목에 독성 가루를 뿌리던 방식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돼 개체 수 조절에 마비가 걸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즉, 쥐들을 자연스럽게 쥐약에 노출시키던 기존 방식이 아이들과 임신부에 유해하다는 EU 차원의 판단에 따라 사용이 금지, 봉인된 별도의 쥐덫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자 방역 효과가 대폭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방역 수단에 제한이 생기자 주민과 관광객의 발걸음을 끊는다 해도 쥐떼의 규모를 줄이지 못한 채 시간만 흘러 보내는 상태다. 시 당국은 이미 11월 한차례 쥐 소탕을 위해 시내 9개 주요 공원을 폐쇄한 적 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생자크탑 광장에서 방역 작업 중인 패트릭 람벵(43)은 “11월 말부터 3주간 약 7m간격으로 쥐덫을 놓고 있는데 겨우 네 마리를 잡는 데 그쳤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쥐 학살 멈춰라’ 동물권 운동도

한편 일각에서는 쥐잡기 운동에 반대하는 여론도 등장하고 있다. 대중청원 웹사이트 ‘메스오피니언’에서는 지난 10일부터 안 이달고 파리 시장에게 보내는 공개 서신 형식으로 ‘생명보호 차원에서 쥐잡기 운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글을 게재한 조 벤체트리트는 “근거 없는 쥐 공포증”이라며 “언론에서 비춰지는 것과 달리 파리에 있는 쥐들은 건강에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운동은 약 2주간 2만2,000여명의 지지를 받으며 점차 확대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쥐의 완전한 박멸이 아닌 개체 수 조절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쥐 연구로 저명한 독립 활동가 피에르 팔가이락은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파리와 같은 대도시에는 평균적으로 인구 1명당 1.75마리의 쥐와 공생하는 것으로 확인된다”며 “쥐들은 정복하려는 본성이 적고 일생을 20㎡ 내에서만 살기 때문에 (1명당) 2마리 선 아래로만 유지된다면 인간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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