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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통할 상상력… 요절한 작가 재조명 기회 되길”

입력
2016.12.2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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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의 김태희 팀장이 57회 한국출판문화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사계절출판사의 김태희 팀장이 57회 한국출판문화출판문화상 어린이청소년 부문 수상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정말 작품 그 자체로 판단해주셨으면 합니다.” 원래라면 인터뷰 자리엔 작가인 박지리가 앉았어야 했다. 그러나 ‘은둔의 작가’였던 그는 요절했다. 대신 편집자였던 사계절의 김태희 팀장이 나섰다.

김 팀장은 이 책이 요절 때문에 높이 평가받을 필요도, 그 때문에 낮은 평가를 받을 이유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했다. 그건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들도 충분히 동의했던 부분이다. “밝고 명랑하고 교훈적이어야 한다는 청소년문학의 금기를 깬 작품” “우리 문학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상상력” “세계 시장에다 내놓아도 될 만한 작품”이란 극찬이 쏟아졌다.

김 팀장이 작가와 처음 만난 건 2010년 사계절문학상 때. 작가는 ‘합체’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쌍둥이 난쟁이 형제가 작은 키를 고민하다 계룡산 계도사를 만나 키 크는 수련에 들어간다는 줄거리의 무협ㆍ코믹소설이었다. 엉뚱한 상상력과 이를 절묘하게 풀어내는 필력 덕에 “청소년 문학판을 뒤흔들 작가”라며 수상자로 결정됐다.

우려도 있었다. “이 정도 쓸 사람이면 신인이 아니라 기성작가가 가명으로 낸 것일 수 있으니 수상자 확정 전에 미리 작가를 만나보라”는 게 심사위원단의 제안이었다. 그렇게 처음 만난 박 작가는 문학소녀였던 적도 없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한 적도 없는, 소설 연습을 해본 적도 없는, 유명 소설가나 소설도 잘 모르고 읽어본 적도 없다고 하는, 차기작 시놉시스가 있냐 물어도 ‘시놉시스’가 뭔지도 모르는, 그냥 대학 갓 졸업한 20대 여성이었다. 이게 뭐야 싶었는데 ‘맨홀’ ‘양춘단 대학 탐방기’ 등 차곡차곡 쌓아가는 작품은 기대 이상이었고 청소년 문학판에서 ‘작가들이 만나고 싶어하는 작가’로 소문났다.

지난해 여름쯤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초고를 받아들었을 때는 경악했다. 원고지 3,000매, 850여쪽에 이르는 분량을 한 호흡에 써내려 간 이 소설을 하룻밤새 꼬박 읽었다. “독자들이 이 작가를 발견하기만 하면, 한국 문학의 판도가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배경은 1~9지구까지 나눠진 계급사회. 가장 우월한 1지구에 사는 가장 모범적인 다윈 영이, 촉망받는 정치가 아버지 니스 영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이 비밀을 추적하다 할아버지 러너 영이 60년 전에 있었던 ‘12월 폭동’과 관련해 또 다른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사소한 몸부림이 이 세상의 악을 어떻게 자라나게 하는지 보여준다. 추리, 스릴러적인 요소가 대폭 가미되어 있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정유정의 소설 ‘종의 기원’, 마쓰모토 세이초의 사회파 추리소설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김 팀장은 지난 5월 정유정 작가의 ‘종의 기원’이 출간되자마자 읽어봤다. 악에 대한 탐구라는 주제의식과 ‘~의 기원’이란 제목이 비슷해서 적잖이 신경이 쓰여서였다. 김 팀장은 “정유정 소설 속 악은 개인적인, 유전적인 악이라면 이 책의 악은 개인적인 악에서부터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악까지 다층적으로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깊이 있고 완벽한 작품이라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홍보나 마케팅 방법도 고민했으나 작가의 요절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다. 김 팀장은 “이번 수상이 박지리 작가의 작품들을 재조명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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