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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쟁이 대학생 25명 인터뷰 해 쓴 ‘부채 보고서’

입력
2016.12.2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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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희씨는 최근 민간연구단체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대학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연구자로 활동한 그의 첫 ‘정규직’ 직장이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천주희씨는 최근 민간연구단체 ‘새로운 사회를 위한 연구원’의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대학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 프리랜서 연구자로 활동한 그의 첫 ‘정규직’ 직장이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TV에서 영화제 시상식하면 아무 생각없이 구경하잖아요. 이 상은 저한테 꼭 그런 상이었어요. 제 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수상 소식을 전한 지 이틀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소감을 묻자, 천주희씨는 밖에 나가 심호흡을 하고 돌아오더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써본 첫 단행본으로 57년 권위의 출판상을 수상하게 됐으니 배우로 치면 첫 영화로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셈 일터. 그런 저자를 발굴한, 출판사 사이행성의 김윤경 공동대표는 “새 청년 저자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이 상으로 저자가 꾸준히 책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됐다는 점에서 너무나 감사하다”고 기뻐했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천씨의 석사 논문 ‘대학생은 어떻게 채무자가 되는가’를 대중 눈높이에서 풀어낸 책이다. ‘부채 연구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역시 빚쟁이가 된 동년배 대학생 25명을 인터뷰해 쓴 ‘청년 빈곤과 채무에 관한 보고서’다.

지방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천주희의 사연은 이렇다. 아버지가 서울 가던 날 1,000만원을 ‘독립 자금’으로 주셨지만, 이후 등록금과 생활비는 온전히 그의 몫이었다. 저자가 10년간 학업 과정에서 쓴 돈은 대략 5,000만원. 대학 1학년 2학기 때 첫 학자금 대출을 받은 이래 8차례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대학원을 졸업했을 때 천씨가 갚아야 할 돈은 총 2,200만원이었다. 그는 “제 채권자가 국민은행에서 한국장학재단으로 바뀌었다. 정부의 학자금 대출 제도가 변하는 시대에 대학을 다녔고 10년간 정책이 3번이 바뀌며 채권자가 3번 바뀐 역사가 제 통장에 기록돼있다”고 말했다.

천씨와 같은 ‘흙수저’ 청년들의 인터뷰와 그들의 대학별 한 학기 등록금, 월세, 교통비, 식비, 교육비 관련 가계부채 증가율 등 각종 수치가 씨줄 날줄로 엮인 이 책의 결론은 정부 학자금 대출은 ‘복지’나 ‘시혜’가 아니라 그냥 ‘빚’, 갚아야만 하는 ‘빚’일 뿐이라는 것이다. 천씨는 이 시대 청년세대를 삶의 모든 문제가 빚과 얽힌 ‘부채세대’라 명명한다.

올해 2월 첫 책을 낸 신생출판사 사이행성의 김 대표는 천씨의 대학원 선배로 천씨가 이 논문을 준비할 때부터 ‘찜’ 해둔 터였다. “논문 제출하는 날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논문 보내줄 수 있냐고. 파일 보내드린 다음 주 월요일에 계약서를 갖고 오셨더라고요.”

천씨 논문이 “다른 분야에 비해 말랑한” 문화기술지 방법론을 택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걸 다시 일반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고치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딱딱한 부채 용어를 순화하고, 논문 순서를 더 읽기 쉬운 방식으로 바꾸고, 저자의 말을 20번 넘게 다시 쓰면서 책 계약금으로 받은 200만원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8월부터 올 9월말 책이 나올 때까지 3번을 다시 쓰는 동안 출판사에게서 1쇄 인세를 당겨 받아야 했다. 천씨는 “저자와 편집자가 상호작용하며 글도 바뀌었으니까 저 혼자 쓴 책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학자금 대출 중 꼭 절반을 갚아 1,100만원이 여전히 빚으로 남았다는 천씨는 상금으로 “제일 이자가 센” 대출금부터 상환할 계획이다. “뜻하지 않은 돈이 생겼으니 일부는 십일조처럼 좋은 일에 후원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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