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운동가 뭉친 환경산타 6명
학용품 등 기증받아 아동에 선물
최순실에 가려 허탈한 마음 위로
“비판만큼 사회적 연대 중요하죠”
“제때 배달하려면 서두릅시다.” 녹색 산타클로스 의상을 갖춘 사람들의 손이 분주했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환경보건시민센터 사무실에서 최예용 센터 소장과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등은 포장지와 상자를 들고 선물을 포장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정성스레 꾸려진 선물에는 인형과 학용품, 한과 등 아이들이 좋아할 물건들이 담겼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센터 활동가들 중심으로 뭉친 ‘환경 산타’ 6명이 23일부터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전국에 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아동들에게 전달할 선물들이다. 모두 센터가 각지에서 받은 기증품이다.
정부 가습기 살균제 폐손상 조사위원장 등을 역임한 백 교수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기업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피해자들에게 ‘혼자가 아니다’라는 위로를 건네는 일도 사회적 연대라는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2013년부터 매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습기 살균제와 석면 피해자 등 환경질환 가정을 위로 방문하거나 선물을 보내는 환경 산타 캠페인을 이어오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북돋아 주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올해 3월 발표된 백도명 교수 연구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 공식 인정된 117명 중 0~4세는 60명으로, 절반 넘게 차지했다. 사망자도 영유아가 4명 중 1명꼴이었다. 조수자 환경보건시민센터 공해피해자지원위원장은 “빨간색이 아니라 환경을 상징하는 녹색 산타복을 입고 활동하고 있다”라며 “소수 인원이 전국 단위로 움직이는 일이 쉽지 않지만, 기뻐하는 아이들 표정을 보면 그만둘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방문 예정지 20여 곳 중에는 피해구제 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강찬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대표네도 포함돼 있다. 강 대표의 딸 나래(10)양은 지난해 5월 아빠와 함께 영국을 방문, 가해 기업인 옥시의 본사 레킷벤키저 앞에서 가습기 문제를 알리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강 대표는 “옥시 불매 운동이 한창일 때 아빠가 미처 발견 못한 집안의 옥시 제품을 먼저 찾아낼 정도로 똘똘한 딸”이라며 “이제 산타를 믿을 나이는 아니지만 환경 산타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구미시에 사는 피해자 김덕종씨 집은 거리의 제약 탓에 환경 산타가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김씨의 아들(9)과 딸(7)에게도 21일쯤 선물로 인형이 배달됐다. 김씨는 7년 전 큰 아들 승준(당시 5세)군을 가습기 살균제로 잃었다. 승준군의 동생들도 비염 증상이 심해 걱정이 깊다. 그는 “상반기만 해도 가습기 문제가 이슈화하면서 올해 안으로 문제가 해결될 거란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사람들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아 피해자들은 허탈감이 크다”고 한탄했다.
최예용 소장은 “매년 피해자 수가 급증하면서 산타가 가야 할 가정도 늘어나 비극적”이라며 “피해 구제를 위한 가습기 살균제 특별법이 국회에서 얼른 통과돼 피해자들에게 선물다운 선물이 주어지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