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납입 저축보험ㆍ보금자리론
H지수 ELSㆍ카드 무이자 할부 등
소비자 선택권 침해 결과 불러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금융당국이 규제나 방침을 변경하면 금융사들이 아예 관련상품 판매를 중단해 버리는 사례가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당국의 뜻에 맞추려면 불가피한 고육책”이라는 게 금융사들의 항변이지만, 금융당국의 무관심 속에 정작 해당 상품이 필요한 소비자들의 선택권은 외면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흥국화재는 지난달부터 보험료 납입기간 3년, 만기 5년짜리 저축보험(행복자산플러스) 판매를 중단했다. 하나생명도 최근 납입기간 2ㆍ3년, 만기 3년짜리 저축보험을 없애고 이를 만기 5년 이상 상품으로 변경했다. 미래에셋생명과 한화생명 등도 다음달부터 이처럼 납입기간이 비교적 짧은 ‘단기납입 저축보험’ 판매 비중을 줄일 계획이다.
보험사들의 이런 반응은 내년 1월부터 저축보험 중도해지 시 원금보장 시점을 현행 ‘만기’에서 ‘보험료 납입기간’으로 앞당기는 당국의 새 감독규정 때문이다. 새 규정이 시행되면 짧은 운용기간 안에 원금 수준까지 수익을 내기 어려워져 아예 상품을 안 파는 게 낫다는 것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에서 보험사로선 상품을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된다”며 “이미 올 들어 저축보험 판매 비중을 대폭 낮추는 중”이라고 말했다. 실제 대형 손해보험사 4곳(삼성ㆍ현대ㆍ동부ㆍKB)의 올 9월말 기준 단기납입 저축보험 판매실적(528억원)은 작년 같은 기간(1,378억원)보다 절반 이상 급감했다.
이런 판매중단 사례는 비단 저축보험뿐이 아니다. 앞서 올 5월에는 당국이 카드사의 불완전판매 감독 강화방침을 밝히자, 카드사들이 “텔레마케팅 판매직원 관리를 제대로 하려면 비용이 증가해 수익성을 맞출 수 없다”며 지난 10년 간 팔아 온 채무면제ㆍ유예상품(DCDSㆍ수수료를 받고 가입자의 사고 시 카드결제 대금을 깎아주는 상품) 신규 판매를 차례로 중단했다. 10월에는 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방침에 주택금융공사가 돌연 보금자리론 대출기준을 대폭 강화해 ‘사실상 대출 중단’ 논란을 빚기도 했다.
작년 초 홍콩 H지수가 급락해 관련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 손실이 급증했을 때도, 당국이 상품발행 자제를 권고하자 증권사들은 일제히 H지수 관련 ELS 판매를 중단했다. 이를 두고, 작년 하반기 이후 H지수가 반등했을 때 수익을 챙길 기회를 소비자에게 오히려 박탈한 것이란 지적이 일기도 했다.
2012년에는 당국이 경제 민주화 바람 속에 카드 수수료율 체계를 개편하자 카드사들이 경영난이 예상된다며 이전까지 인기를 끌던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일제히 중단해 비난을 산 적도 있다.
이런 모순에 대해 금융당국은 원론만 강조한다. 당국 관계자는 “소비자 피해 우려가 높은 상품은 사전규제가 강화돼야 대형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면서 다만 “규제 변화에 따른 부작용에도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김석영 보험연구원 금융정책실장은 “당국의 적절한 규제는 필요하지만 상품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소비자 선택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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