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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항암치료에도 잘 자라준 딸, 고마울 뿐이죠"

입력
2016.12.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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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기 성남의 한 병원에서 항암 후유증 치료를 끝낸 이관희씨가 가족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신지후 기자
20일 경기 성남의 한 병원에서 항암 후유증 치료를 끝낸 이관희씨가 가족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신지후 기자

남편 대장암 치료 마치자마자

아내 곧바로 림프종 4기 진단

지난 9월 10일 경기 안양시에 사는 이관희(37)씨는 딸 소연이 돌잔치 행사장 앞에 축의금함 대신 기부함을 설치했다. 이씨와 아내 오은주(33)씨가 각각 대장암 4기, 림프종 4기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 치료를 하는 동안 건강하고 밝게 자라준 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돌잔치에 참석한 140여명의 정성은 기부함을 가득 채웠고 이씨 부부는 이 중 365만원을 국제구호개발 비영리기구(NGO) 굿네이버스에 기부했다. 이씨는 22일 “엄마 아빠가 모두 암과 싸우는 동안에도 소연이는 1년이라는 시간을 사랑스럽게 자라줬다”며 “내 곳간만 채우지 않고 받은 사랑을 주위에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게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에게 기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소연이는 이씨 부부가 결혼 3년 만에 얻은 귀한 딸이다. 모녀가 산후조리원에서 조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던 지난해 10월, 이씨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 극심한 복통으로 찾은 병원에서 대장암 4기 판정이 내려진 것이다. 젖먹이 딸을 제대로 보살필 겨를도 없이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는지 이씨는 6개월 지난 올해 4월 ‘완전관해(암세포가 5% 미만인 상태)’ 판정을 받았다.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남편이 회복되자 이번에는 허리 통증으로 치료를 받아왔던 오씨에게 림프종 4기 판정이 내려졌다. 운명을 탓할 법도 했지만 부부는 딸을 오씨 어머니에게 맡기고 치료에 전념하기로 했다. 엄마 아빠가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는 게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엄마ㆍ아빠 없이 1년 지내줘 감사

받은 은혜 주위에 돌려주자 결심

사랑 베푸는 부모로 기억되고파”

부부는 투병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큰 깨달음을 얻었다. 씩씩하게 자라는 소연이를 보면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주변을 살피고 사랑을 베푸는 부모로 기억되자고 다짐했다. 굿네이버스에 기부를 결심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씨는 “2014년부터 삶을 꾸리는데 지장을 주지 않은 범위에서 소액 후원을 해왔는데 아프고 나서 관점이 싹 바뀌었다”며 “내가 가진 전부가 내 것이 아니라는 신념을 갖고 딸의 첫 생일을 맞은 기쁨을 주위에 나누기로 했다”고 말했다.

돌잔치 참석자들은 처음에 기부함에 축의금을 넣기를 꺼렸다고 한다. 돌 축의금도 일종의 경ㆍ조사 부조(扶助) 개념인 한국사회에서 돈을 모두 기부하면 부부가 쓸 돈이 없을까 봐 걱정이 앞서서다. 이씨는 “외국과 달리 한국에선 특별한 날에 기부금을 모으는 일이 생소해 기부함에 돈을 넣지 않고 따로 챙겨주려는 분들이 많아 당황하기도 했다”며 “축의금 기부가 돌잔치 취지라고 거듭 양해를 구하자 다들 흔쾌히 동의했다”고 말했다.

기부금 365만원에는 딸이 살아온 365일 매일이 소중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가족을 아껴 주는 많은 이들의 기운을 받아서일까. 오씨도 최근 림프종 항암 치료를 마치고 지금은 요양병원에서 후유증을 다스리고 있다. 회복 경과도 좋은 편이다. 이씨는 “더 많은 금액을 기부하면 좋았겠지만 지인들이 딸에게 전하는 사랑 하나하나를 담아 감히 돈으로 형언할 수 없다”며 밝게 웃었다. 굿네이버스는 기부금을 이씨 부부가 사는 안양지역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사용할 계획이다.

글ㆍ사진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이관희, 오은주 부부와 딸 소연이가 지난 9월 10일 돌잔치를 맞아 찍은 기념 사진.
이관희, 오은주 부부와 딸 소연이가 지난 9월 10일 돌잔치를 맞아 찍은 기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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