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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의 원근법] 보수의 위기, 보수의 혁신

입력
2016.12.22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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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분당이 가시화되고 있다. 김무성ㆍ유승민 의원으로 대표되는 ‘비박’ 의원들 35명이 27일 새누리당을 탈당한다고 한다.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이후 보수 정당이 둘로 나뉘는 초유의 사태다. 탈당하는 이들은 중도보수를 지향하는 새 정당을 머잖아 출범시킨다고 하니, 우리 사회 정당 질서가 그 자신들이 표방하는 이념을 존중한다면 보수ㆍ중도보수ㆍ중도ㆍ중도진보ㆍ진보의 스펙트럼을 가진 다당제로 변화하고 있다.

보수의 내적 분화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강제한 결과다. 특히 수도권 국회의원들의 경우 정당성을 완전히 상실한 박근혜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하긴 어렵다. ‘친박’과 결별한 후 개헌과 대선을 통해 정치적 부활을 모색하려는 게 이들의 기본 구상일 터다. 이들은 다른 세력들과의 통합을 통해 ‘신(新)보수’ 또는 ‘범(汎)보수’로의 변신을 꾀하겠지만, 이 시도가 성공을 거둘지 예단하긴 어렵다.

2016년 겨울, 일대 위기에 빠진 우리 사회 보수를 지켜보면서 새삼 보수의 이념인 보수주의(conservatism)를 생각하게 된다. 보수주의는 ‘보존한다(conserve)’는 말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서구 보수주의 선구자인 에드먼드 버크에 따르면, 인간의 합리적 능력은 제한돼 있고, 사회는 이성이 아니라 전통적 도덕ㆍ관습에 의해 재생산되며, 문명의 진보는 사회 안정의 유지를 통해 가능하다. 버크의 보수주의는 전통주의ㆍ질서주의ㆍ점진주의를 내세움으로써 진보주의에 맞서는 이념적 대항 축을 제공했다.

이러한 ‘고전적 보수주의’는 20세기 후반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했다. ‘신보수주의’, 즉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가 바로 그것이었다. 경제학자인 하이에크와 프리드먼, 정치가인 대처 총리와 레이건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신보수주의는, 전통과 질서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보수주의를 계승했지만, 자유시장 경제를 적극 옹호한다는 점에서 혁신을 추구했다. 이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까지 서구사회에선 지배적인 정치ㆍ경제 패러다임으로 군림했다.

문제는 우리 사회 보수 세력에게 이러한 보수의 철학이 매우 빈곤하다는 점이다. 보수 세력이 의존해온 것은 지역주의 정치,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 진보 세력에 대한 중도층의 실망이라는 반사이익이었다. 보수주의는 과거를 고수하려는 ‘수구(守舊)’, 사회 변화에 역행하는 ‘반동(反動)’과는 다른 사상임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국민에게 보수는 권위주의로 회귀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정치 세력으로 비쳐 왔다.

지난 민주화 30년 동안 우리 사회 보수 세력을 지탱해 온 것은 파워엘리트 연합의 강고한 지지를 기반으로 한 상황에 대응하는 능수능란한 정치력에 있었다.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1993년에는 김영삼 정부를 출범시켰고, 2007년 대선에선 뉴라이트의 활약과 선진화 담론을 통해, 2012년 대선에선 진보의 경제민주화론과 복지국가론의 벤치마킹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 보수 정부는 안정 속의 개혁이라는 보수의 고전적 가치는 저버린 채 기득권 카르텔의 이익을 옹호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보수 정부 9년 만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상 최악의 정치적 사건으로 미증유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나는 보수주의를 지지하지 않는다. 또 진보주의라고 해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이명박 정부가 지향한 ‘시장 보수’든, 박근혜 정부가 추구한 ‘안보 보수’든, 두 정부는 보수 본래의 가치인 사회 통합과 공동체 구현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근대적 보수 정부라기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입증하듯 전근대적 ‘약탈 정부’에 가까웠다. 둘째, 국가의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정치가 발전하려면, 보수와 진보 간의 생산적 경쟁이 중요하다. 리영희 선생이 일찍이 갈파했듯 새는 좌ㆍ우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 날개가 이념이라면 새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이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보수의 일대 혁신을 기대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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