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랬겠지만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시장에 나가는 일은 참말 설렜다. 엄마의 종종걸음을 따라다니며 열무와 시금치도 보고 바닥에 붙어 구물구물거리는 문어 구경도 하고 가자미와 꽁치 비린내도 맡았다. 어시장 구정물이 튀어 바짓단이 젖는 건 그래서 지금도 아무렇지 않다. 얌전히 따라다닌 대가로 머리핀 한 개 얻어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릴 수 있으면 그걸로도 충분히 신이 나는 시장 나들이였다.
장보기가 끝나면 먹자골목 단골집에 들러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엄마는 늘 잔치국수였다. 소면 다발 위에 노란 멸치국물 한 국자 부어주는 것이 뭐가 그리 맛있다고 엄마는 한 그릇을 금세 다 비웠다. 나는 잔치국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잔치국수를 먹어야 했다. 엄마도 단골집 기다란 나무의자에 앉을 때마다 내 메뉴를 두고 고민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떡볶이는 맵고 김밥은 재료가 나빠 안 되고 파전은 집에서 먹는 게 훨씬 더 맛있고 튀김은 기름이 더러워서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토라진 채로 잔치국수를 먹었다. 그렇다고 집에서 엄마가 덜 매운 떡볶이를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김밥은 귀찮아하고 파전은 해 줘봐야 안 먹을 게 뻔하다 하고 튀김처럼 번거로운 건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렇게 까탈스럽던 엄마가 어느 날 내게 물었다. “닌 저런 거 징그럽어서 못 먹제?” 엄마가 가리킨 건 번데기였다. “왜 못 먹어. 잘 먹지.” “니가 저걸 언제 먹어봤나?” 나는 킥 웃었다. “엄마 없을 때 다 먹어.” 엄마는 그날 번데기를 오백원어치 샀다. 고깔 모양으로 돌돌 말은 종이에다 담아주던 번데기를 엄마와 나는 오물오물 잘도 씹어먹었다.
소설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