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발생한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의 피격 사건은 여러모로 잘 구성된 각본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누군가 범행계획 마련은 물론, 범인이 돋보이게 미디어에 비치도록 손을 썼다는 정황이 눈에 띈다. 대중의 시선을 혼란스럽게 하려는 모종의 시나리오가 작용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배후에서 알 수 없는 조직이 암약하고 있다는 이른바 ‘음모론’의 시각이 팽배한 사건이다.
현지 언론들에 따르면 파면 후 최근 복직된 경찰로 확인된 범인은 범행 현장인 앙카라 현대미술관으로 소지가 금지된 총기를 지닌 채 유유히 진입했다. 보안 직원들은 검색대를 통과하지도 않은 그를 살해된 러시아 대사 바로 뒤편에 서도록 했다. 경찰 내부에 범인을 도와준 변절자가 있었을 것으로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리를 잡고 선 범인은 15발이 장전된 글록 모델로 보이는 권총을 꺼내 들고 지체 없이 총 11발을 쏘아 대사를 쓰러트린다. 흥미로운 부분은 현장에서 찍힌 사진과 동영상이 마치 계획된 프레임 속에서 촬영된 것처럼 극히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첫 격발에 인상을 찡그리는 대사, 손 쓸 틈 없이 무력하게 바닥으로 주저앉은 모습, 그 뒤에서 일사불란하게 주변을 제압하면서 “알레포(시리아 내전지역)를 잊지 말라”고 소리치는 검은 정장의 범인. 현장의 인물들은 시곗바늘이라도 된 것처럼 성실하게 배역을 수행한 듯 보였다. 뉴욕타임스는 “비디오 촬영을 위해 연출된 전시장에서 이뤄진 행위예술로 느껴졌다”고 평했다. 이 끔찍한 비극이 입지를 단단히 하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의 계산된 정치적 트릭일 수 있다는 의심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이날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음모론의 조각들은 이 밖에도 즐비하다. 총성을 마다치 않고 범인을 돋보이게 촬영한 사진기자, 저격범을 현장에서 부지불식간에 사살해 그의 입을 영원히 막아버린 경찰, 그리고 피 한 방울 흐리지 않은 바닥. 호사가들의 상상에 맞장구치듯 터키 정부는 범인을 에르도안의 최대 정적인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의 추종자로 몰아갔다.
마치 흥미로운 이야기처럼 소비되는 이러한 음모론적 시각은 대체로 사건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음으로 인해 눈덩이처럼 커지고 확산된다. 만일 사법당국이 의혹을 잠재울 만큼 완벽한 팩트를 끄집어낸다면 쓸데없이 음모론이 덩치를 키울 일은 없을 것이다. 러시아 대사의 저격 사건에서도 죽은 범인과 희생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으니 대중은 그저 한동안 이와 같은 음모론의 베일만 만지작거려야 할 처지이다.
실체를 확인할 길 없는 사건에 우리는 이처럼 종종 음모론의 명찰을 붙여왔다. 제2차 세계대전 최대 전범인 아돌프 히틀러의 사라진 주검, 반세기가 지나도록 의혹이 풀리지 않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 9ㆍ11테러, 그리고 수장된 오사마 빈 라덴 등에는 하나같이 책 한 권 분량의 음모론이 뒤따른다. 아무도 올바른 답을 주지 않기에 결국 음모론으로 둘러싸여버린 사건들이다.
안타깝게도 전 국민을 바닥 없는 절망 속으로 끌어내린 박근혜 대통령 비선 국정농단 사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수많은 의혹들도 음모론의 목록 아래 차곡차곡 쌓일 가능성이 크다. 박 대통령이 죽은 듯 입을 닫으며 답을 잃어버린 세월호 7시간, 최순실 등 비선세력의 범죄행위에 대해 어쩌면 우리는 실체를 밝혀내지 못한 채 음모론으로 소비하며 끝내 만족할지 모른다. 미국의 언어학자 노암 촘스키는 음모론을 ‘지적인 욕설’로 정의했다. 누군가 세상의 진실을 상세히 밝히려 할 때 이를 방해하길 원하는 이들이 들이대는 논리가 바로 음모론이라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음모론에서 멈춰 선다면 실체적 진실은 멀어진다는 얘기이다. 음모론에 만족해선 안 되는 이유이다.
양홍주 국제부차장ㆍyangh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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