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야구를 보고 싶다.’
프로야구 LG 트윈스 팬들은 몇 년 전까지 이렇게 외쳤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었다. LG는 2013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아 팬들의 갈증을 풀어줬다.
프로배구에서는 한국전력 팬들이 올 시즌 ‘봄 배구’를 볼 채비에 들어갔다. 배구 포스트시즌은 3월경 시작한다. 7팀 중 3위 안에 들어야 한다. 아니면 4위를 해도 3위와 승점 3점 차 이내면 단판 승부로 준플레이오프를 치를 수 있다. 한국전력은 그 동안 ‘만년 꼴찌’ 이미지가 강했다. 2014~15시즌 3위를 한 적이 있지만 12~13과 13~14시즌 최하위, 15~16시즌 5위 등 ‘봄 배구’ 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3라운드를 치르고 있는 현재 3위로 현대캐피탈, 대한항공과 당당히 ‘3강’을 형성하고 있다. 4년째 지휘봉을 잡고 있는 신영철(52) 한국전력 감독은 “다른 팀과 비교하면 멤버가 강하다고 볼 수 없지만 올해는 꽤 조화롭게 선수 구성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한국전력은 전광인(25)과 서재덕(27) ‘쌍포’를 빼면 일반 팬들이 알만한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였지만 세터 강민웅(31)과 센터 윤봉우(34) 등 전 포지션에 걸쳐 탄탄한 전력을 보여주고 있다.
세터 강민웅은 기량이 일취월장했다. 연습생 출신인 그는 삼성화재 소속일때는 유광우(31), 대한항공 시절에는 한선수(31)에 밀려 거의 코트를 밟지 못했다. 선수시절 월드리그 세터상을 두 번이나 받은 ‘명 세터’ 출신 신영철 감독은 강민웅의 잠재력을 눈여겨보고 작년 12월 트레이드를 통해 데려온 뒤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작년 시즌은 ‘이겨도 혼나고 져도 혼나는’ 나날이었다, 신 감독은 “잘 해도 뭐라고 하고, 못 하면 더 뭐라고 하니 민웅이도 좀 황당했을 거다. 하지만 난 당장 작년 시즌이 아닌 올 시즌을 내다보고 민웅이를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강민웅은 21일 현재 세트당 평균 11.5개의 세트를 성공해 이 부문 1위다.
올 6월에는 현대캐피탈에서 은퇴를 권유 받던 노장 윤봉우를 영입해 높이를 보강했다. 윤봉우는 세트당 0.712개꼴로 상대 공격을 가로막으며 최민호(28ㆍ현대캐피탈ㆍ0.633개)와 이선규(35ㆍKB손해보험ㆍ0.600개)를 제치고 ‘탑 블로커’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한국전력은 ‘5세트의 강자’다.
올 시즌 7번 풀 세트 경기를 해서 1라운드 한 번 빼고 6번을 이겼다. 선수들이 대담하고 집중력이 강하다는 의미다. 신 감독은 “5세트 가면 범실이 두려워 서브가 약해지기 마련이다. 우리 팀에게 서브를 평범하게 넣으면 점수내기 쉽지 않을 거다”고 자신했다. 리시브와 세트, 공격으로 이어지는 3박자가 톱니바퀴 맞물리듯 잘 돌아가고 상대의 수를 훤히 꿰뚫고 있기에 가능하다.
신 감독은 요즘 달라진 팀의 위상을 체감하고 있다.
이전에는 한 세트 내주면 팬들의 눈빛에서 ‘오늘 또 지네’ 라는 분위기가 읽혔지만 이제는 ‘끝까지 가서 또 이기겠지’하는 희망이 느껴진다.
한국전력이 현재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느냐는 체력과 부상 방지에 달려 있다. 다른 팀에 비해 선수층이 얇기 때문이다. 선수들의 휴식과 재충전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는 신 감독은 “5라운드쯤 가면 포스트시즌 진출 팀의 윤곽이 보일 것 같다. 이 흐름을 잘 유지 하겠다”고 다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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