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째 서온 코트지만 그날은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전영아(45) 심판은 18일 경기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우리카드와 OK저축은행의 프로배구 남자부 V리그 경기 주심을 봤다. 2005년 V리그 출범 후 남자부 경기에 여성 주심이 투입된 건 처음이다.
전 심판은 여자배구 라이트 공격수 출신으로 1990년 경복여상을 졸업하고 후지필름에 입단해 청소년 대표로 활약했다. 이듬 해 한일합섬으로 트레이드된 뒤 1993년에 만 스물 둘의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170cm밖에 안 되는 키 때문이었다. 전 심판은 “그 때 제가 가장 키가 작은 선수였다. 한일합섬에 장신들이 많아 설 자리가 없었다. 지금처럼 리베로가 있었다면 모를까 과감하게 접기로 했다”고 회상했다. 평소 높았던 학구열도 그를 코트 밖으로 끌어당긴 계기였다. 은퇴 후 1994년 한양대 경기지도학과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고 다닐 정도로 독하게 공부에 매달렸다. 대한배구협회 심판강습회에 참가한 게 계기가 돼 대학 졸업 후 아마추어 심판으로 활동했고 2005년 한국배구연맹(KOVO) 심판 1기로 입문했다. 2012년에는 국제심판 자격증을 땄고 2012~13시즌 V리그 심판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2006년 9월 KT&G와 흥국생명의 여자부 경기에 주심으로 데뷔했다. 당시 정말순 심판에 이어 ‘2호’ 프로배구 여성 주심이었는데 10년 만에 남자 프로배구 주심 ‘1호’ 기록을 새로 썼다. 전 심판은 “개인적으로 역사적인 날이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남자 경기와 여자 경기는 ‘속도’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전 심판은 “여자부는 느린 대신 랠리가 많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남자 경기는 볼 스피드가 훨씬 빨라 순간 판단력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서태원 KOVO 심판위원장은 “전 심판은 냉철한 판단으로 두루 신임이 높다. 남자부 경기도 무리 없이 잘 소화했다”고 칭찬했다.
심판으로 보람을 느낄 때를 묻자 전 심판은 “선수와 감독, 스태프들이 한 경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는 지 잘 안다”며 “심판도 사람이라 오심이 없을 수는 없지만 최대한 줄여야 한다. 양 팀 모두 판정에 큰 불만 없이 조용히 경기가 끝날 때 뿌듯하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좋은 판정은 주심이 아니라 부심과 선심이 모두 합심해 만드는 것이다”고 몸을 낮췄다.
시즌 중 1주일에 3~4경기 주ㆍ부심을 봐야 하는 강행군을 소화할 때 든든한응원군은 역시 가족이다. 전 심판의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출전하는 모든 경기를 챙겨보며 ‘우리 며느리 판정 훌륭했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는데 힘내라’라고 종종 휴대폰 문자를 보낸다. 초등학교 때 배구 선수였고 지금도 동호회에서 활동 중인 남편도 틈틈이 ‘카메라 앞에서 화가 나 보인다. 심판은 포커페이스여야 한다’고 적극 모니터링을 해 준다. 전 심판은 “오래 심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것도 가족 덕분이다”며 “한국 프로배구 발전에 힘을 보탤 수 있는 심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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