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직원 댓글 행위 공모
재판부가 세세한 입증 요구
파기환송심 1년 5개월째 심리
공소유지 검사들 3명 이탈
법원 인사로 재판부 변경 우려도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 논란을 야기한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된 지 1년 5개월이나 지났지만 도무지 판결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재판 진행을 둘러싼 재판부와 검찰이 극심한 마찰만 되풀이하면서, 공판을 이끌던 검사들도 3명이나 이탈하는 상황이다. 내년 법원 인사로 재판부 변경 가능성도 높아 그간 심리마저 헛수고가 될 우려가 나온다.
박 대통령 당선 4주년인 19일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김시철) 심리로 열린 원세훈(65) 전 국정원장 등의 파기환송심 19회 공판은 ‘과연 국정원의 댓글 공작이 제대로 단죄될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절로 나왔다.
먼저 검찰이 “재판장이 1년 5개월째 심리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재판부가 검찰과 변호인 쪽에 2012년 대선 당시 후보들에 대한 댓글과 트윗을 작성한 국정원 직원별 행위들이 어떻게 원 전 원장과의 공모로 연결되는지 세세한 입증을 거듭 요구하자 검찰이 반박에 나선 것이다. 원 전 원장의 지시로 댓글 활동을 했음을 이미 입증했다는 것이다.
재판부가 육군 정훈장교 사건 무죄를 이유로 추가 심리가 필요하다고 한 데 대해서도 검찰은 “해당 판결은 새로운 법리도 아니며, 이 사건과 관계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 판결은 2012년 새누리당 후보를 반대하는 트윗글 등을 1,000여회 게시해 선거법 위반 등으로 기소돼 벌금형을 받았던 육군 대위에게 지난해 12월 무죄가 난 건이다. 비방 아닌 지지 게시글도 다수인데 모두 유죄로 여긴 것은 잘못이라며 대법원이 고등군사법원에 사건을 돌려 보냈었다. 재판부는 이 판례를 들어 “(국정원 직원의) 행위별 공모관계를 판단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검찰이 “그러면 앞선 1ㆍ2심도 심리 미진의 위법을 저질렀다는 거냐”고 반문하자 재판장은 “정훈장교 판시에 비춰보면 그렇다”고 답했다.
재판부 스스로 심리 방향을 못 잡고 고민하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했다. 재판부는 “‘심리 미진’ 표현에 저희가 느끼는 부담은 강하다. 어떤 식으로 심리해야 될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검찰과 변호인이 같이 고민하고 협조해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재판 도중 “솔직히 결론이 어떻게 나도 (검찰이) 상고할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니냐”고도 했다.
급기야 원 전 원장의 변호인마저 “지나친 완벽주의는 독이 될 수 있다”며 답답함을 드러냈다. 이동명 변호사는 “지금 어떻게 실행행위자들을 다 조사하나. 앞으로 몇 년 걸릴 지 모른다. 끝낼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숨을 토하며 출국금지나 좀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재판이 헛돌며 공소유지를 맡았던 검사들도 하나 둘 떠나 1명만 남게 됐다. 수사팀 부팀장이던 박형철(48ㆍ사법연수원 25기) 전 부장검사가 좌천성 인사에 반발해 올 1월 검찰을 떠난 뒤 이복현(44ㆍ32기) 단성한(42ㆍ32기) 김성훈(41ㆍ30기) 검사 셋이 재판을 챙겼다. 하지만 이 검사는 최순실 국정농단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합류하면서 원 전 원장 재판에서 빠졌다. 단 검사도 1년 유학 예정으로 올해 말 미국으로 떠난다. 단 검사는 취재진과 만나 “공소유지에 차질이 없도록 (검찰이) 열심히 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2월 법원 인사로 인한 재판부 변경 가능성도 높아 재판은 더 장기화할 전망이다. 재판부에서 판사가 1명이라도 바뀌면 재판 갱신 절차를 밟아야 한다. 김시철 부장판사도 형사사건을 2년간 맡아 법원 관행상 옮길 확률이 높다.
법원 일각에서는 “민감한 사건을 피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 받을 만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사건 파기환송심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법 국정감사에서 2년 연속 재판 진행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취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다음 공판은 내년 1월 16일 열린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