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총영사관 명의로 관할 구청장에 서한
소녀상추진위, 모금ㆍ제작 완료… 제막식 31일 예정
관할구청, 불허 입장… “관련법상 허가 대상 아냐”
부산 일본영사관 총영사가 부산 동구청장에게 “인근에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서한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부산지역 시민단체가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했지만 동구청이 일본영사관 인근 건립을 불허한 것을 두고 관할구청이 영사관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ㆍ서포터즈’(이하 소녀상추진위)는 20일 오후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소녀상 건립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서 정경애 부산여성회 통일평화위원장은 “일본영사가 동구청장에게 소녀상을 건립하면 안 된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동구청과 부산시는 일본의 눈치를 보지 말고 시민과 함께 우리 땅에 역사를 바로 세우는 소녀상 건립에 나서길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ㆍ60) 총영사는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에게 한 통의 서한문을 보냈다.
모리모토 총영사는 이 서한문에서 “일부 시민단체가 우리 총영사관 앞 인도에 소녀상을 설치하려고 활동 중이고, 올해 12월 28일 설치를 목표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며 “구청장이 강한 리더십으로 대응해주고 있지만 일본 정부로서는 영사관 앞의 동상 설치가 일본에 대한 배려를 매우 소홀히 하는 행위로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이어 “부산이라는 한국 제2의 도시에 일본과 일본국민의 보호하고 양국 우호관계를 촉진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영사관 주변에 소녀상이 설치될 경우 일본 국민의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을 방문하는 일본 관광객 수가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표했다. 모리모토 총영사는 “올해 들어 겨우 회복세인 일본인의 한국 방문객 수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특히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이나 KTX 부산역이 인근에 있어 다수의 일본인이 찾는 동구는 그 영향을 보다 크게 받는 것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고 말했다.
일본영사관 측의 이 같은 반응에도 불구, 시민단체들은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서두르고 있다. 소녀상추진위는 지난 3월부터 모금활동을 벌여 168개 단체, 19개 학교, 5,138명의 개인이 참여해 목표액(7,500만원)을 넘긴 8,500만원이 최종 모금됐다고 밝혔다.
부산 평화의 소녀상은 이미 서울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ㆍ김운성 부부작가가 제작을 마친 상태다. 추진위는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을 맞아 합의 무효 등을 주장하며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건립하겠다는 입장이다.
동구청은 소녀상은 허가시설 대상물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불허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동구청 관계자는 “도로법 시행령을 보면 도로점용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공작물이 명시돼 있는데 거기에 해당되는 시설이 아니다”며 “(일본영사관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외부의 시선이 있을 수 있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법의 테두리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편 소녀상추진위는 당초 오는 28일 예정됐던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 날짜를 31일로 연기했다. 이들은 동구청의 불허 방침과 무관하게 제막식을 열겠다는 입장이다.
정치섭 기자 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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