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판서 무죄 호소
배임-사기 겹친 혐의 오류 주장
검찰은 대법 판례 들어 반박

“구치소에 보름 이상 있으면서 제가 평생을 바친 조국을 생각하며 벽을 보고 통곡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우조선해양 비리에 연루돼 20일 법정에 선 이명박 정부 최고 실세인 강만수(71ㆍ구속기소) 전 산업은행장은 시종일관 억울함을 호소했다. 검찰은 혐의 입증을 자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 남성민) 심리로 이날 열린 첫 공판 준비기일에 강 전 행장은 하늘색 줄무늬 수의를 입고 나타났다. 피고인 출석의무는 없지만 강 전 행장은 굳이 법정에 나와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강 전 행장은 재판이 시작되자 떨리는 목소리로 “대우조선해양 문제가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고, 제가 산업은행을 맡고 있을 때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라며 “공직에 있는 동안 돈 하나 받지 않고 살아 왔다”고 주장했다.
검찰 수사 과정에 대한 불만도 내비쳤다. 강 전 행장은 “산업은행, 대우조선해양과 통화 한번 해보지 못했고 자료도 열람하지 못한 상태에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의 변호인은 “검찰은 지인이 운영하는 업체에 투자하도록 한 게 배임이라고 하는데, 강 전 행장의 지인은 대우조선을 속여 돈을 받아낸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라며 “검찰의 법리 적용에 문제가 많다”고 거들었다.
검찰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검찰은 “압수했던 피고인의 수첩을 돌려주는 등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해줬다”고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또 검찰은 변호인 측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비슷한 사례에서 1명의 피해자를 두고 사기죄와 배임죄가 함께 성립할 수 있다는 게 대법원 판례”라며 “사기대출 사건에서 대출해준 금융기관 직원은 배임, 대출자는 사기 혐의로 유죄가 인정되는 것과 동일한 구조”라고 밝혔다. 아울러 관련 법리에 대한 사례 분석이 첨부된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했다.
강 전 행장은 산은금융지주 회장 및 산업은행장이던 2011년 남상태(66) 전 대우조선 사장에게 지인 김모(46ㆍ구속기소)씨가 운영하는 바이오에탄올업체에 44억원을 투자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강 전 행장은 김씨와 ‘패밀리’라는 사적 모임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남 전 사장의 경영비리를 눈 감아주는 대가로 투자를 종용했다. 강 전 행장은 고교 동창이 경영하는 기업으로부터 수억원대 뇌물을 받고, 고재호 전 대우조선 사장과 임기영 전 대우증권 사장에게 지시해 여야 국회의원 7명에게 정치후원금을 내게 한 혐의도 받고 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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