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 유유히 잠입해 7발 총격
“시리아 알레포를 잊지 말라”
22세 범인 현장에서 사살돼
범행 과정 카메라에 고스란히
촬영각도 등 자연스러워 의혹


러에 보복 IS 연계 추정 불구
터키ㆍ러 파탄 노린 귈렌주의자說
에르도안 제2숙청 위한 기획설도
터키 주재 러시아 대사가 19일(현지시간) 앙카라의 한 전시회에서 총격 테러로 사망했다. 범인이 대사의 등뒤까지 접근해 무려 7발을 쏠 동안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데다 범행과정이 사진기자의 촬영으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스란히 전세계에 전달된 점 등으로 인해 이번 테러가 우발적 단독범행이 아닌 조직적 세력의 치밀한 각본 하에 진행됐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안드레이 카를로프(62) 주터키 러시아 대사는 이날 오후 7시5분쯤 터키 수도 앙카라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터키인의 눈으로 본 러시아’ 개막식에서 축사를 하던 도중 사복경찰로 위장한 남성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검은색 정장과 넥타이 차림의 남성은 대사의 등뒤로 접근해 연속으로 4발을 쐈고, 바닥에 쓰러진 대사에게 다시 3발을 발사했다. 카를로프 대사는 이후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숨졌다.
터키 내무부는 이날 범인이 전직 터키 경찰관인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22)라고 밝혔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알튼타시는 대사를 사살한 후 왼손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아랍어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고 외친 뒤 “우리는 지하드(이슬람 성전)을 촉구한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예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터키어로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를 잊지 말라”며 “누구든 (시리아에서) 압제에 관여한 사람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알튼타시의 외침은 이번 테러가 시리아 정부군을 도와 알레포에서 반군을 몰아낸 러시아에 대한 보복성 테러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알튼타시는 이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투항요구를 거부하고 대응사격을 벌이면서 사살됐다. 알튼타시는 연설을 마친 후 “경찰에 전화해라.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라며 현장에 있던 관람객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이 과정은 현장에 있던 터키 일간지 ‘휴리옛’의 사진기자 하심 킬릭이 범행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고스란히 외부로 전달됐다. 킬릭은 “총격이 벌어지자 칵테일 바 뒤로 기어가 숨었다”며 “사진을 찍은 뒤 로이터통신 등에 돈을 받고 팔았다”고 WP에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테러 현장에서 찍힌 사진이라고 보기에는 촬영각도와 범인의 포즈 등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점을 들어 공모 가능성을 비롯한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터키 경찰은 이날 알튼타시가 수니파 극단주의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 연계된 것으로 추정했다. 용의자가 남긴 ‘알라후 아크바르’라는 말 자체가 IS 테러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다.
하지만 터키 정부는 이번 테러의 배후세력이 ‘귈렌주의자’일 가능성에도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귈렌주의자는 미국에 망명 중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75)을 추종하는 세력으로 귈렌은 올 7월 발생한 터키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된 인물이다. 알튼타시가 쿠데타 연루 혐의로 경찰 직에서 해임됐던 만큼 이번 테러가 터키와 러시아 관계를 붕괴시키기 위한 귈렌주의자들의 조직적인 반(反) 정부 공작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알튼타시는 해임 한달 후인 11월 혐의를 벗고 복직됐을 뿐 아니라 귈렌 측과 연계된 근거 또한 제시되고 있지 않아, WP는 “에르도안이 제2의 숙청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비밀리에 이번 테러를 일으켰다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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