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는 각국의 교통안전 관련 대표 기관이 ‘올해의 안전한 차’를 발표한다. 미국 고속도로 교통안전협회(IIHS), 유럽 신차평가프로그램(유로NCAP), 그리고 우리나라 국토교통부에서도 빠지지 않고 안전한 차를 발표했다. 각 자동차 브랜드들은 자사의 자동차가 ‘가장 안전한 차’라며 앞다투어 광고한다. 자동차의 필수 덕목인 안전 평가인만큼 소비자들은 관심 있게 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최상급을 동원한 ‘가장 안전한’ 차가 한두 대가 아니다. 선정된 차들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어도 되는 걸까?
국내 사정부터 살펴보자.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올해의 안전한 차 1위는 한국GM 말리부와 르노삼성 SM6다. 3위는 기아의 K7. 순위 발표에만 급급한 기사들만 훑어본다면 올해 국내 출시된 모든 자동차 중 말리부와 SM6가 가장 안전하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발표에는 커다란 맹점이 있다. 평가 대상 차종이 14종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 중 9종이 국산 브랜드다. 판매량이 많은 차를 선정해서 평가하기 때문이다. 5대의 수입 브랜드 중 3대는 제작사 요청에 의한 것이고, 선발에만 의존한다면 수입 브랜드 중 후보는 단 2대다.
유로NCAP이 선정한 가장 안전한 차는 현대 아이오닉, 도요타 프리우스, 폭스바겐 티구안이다. 유로NCAP의 경우 각 세그먼트 별로 1위만 발표한다. 각각 스몰 패밀리 카, 라지 럭셔리 카, 스몰 오프-로드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유로NCAP가 밝힌 평가 대상은 “가장 인기 있고 흥미로운 모델들(most popular and interesting models)”이다. 올해는 18대만 리스트에 올랐고, 다른 세그먼트에는 아예 후보가 없어 단 세 대만이 가장 안전한 차에 선정된 것이다.
미국 IIHS는 무려 82대의 ‘가장 안전한 차(톱 세이프티 픽)’를 발표했다. 곳곳에서 자사의 차가 가장 안전하다고 홍보할 때 이 자료가 가장 자주 근거로 등장하는 이유다. 이 중 38대는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 44대는 톱 세이프티 픽(TSP)을 받았다. 다섯 가지 충돌 테스트와 전방추돌 방지 테스트 외에 올해 추가된 항목인 헤드라이트 평가에서 좋음(Good) 또는 허용(Acceptable) 등급을 받은 차종들만 플러스를 획득했다.
국산 브랜드는 현대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와 싼타페, 제네시스 G80, G90이 TSP+를 받았으며 현대 쏘나타, 투싼, 기아 스포티지, 쏘렌토, 옵티마(국내명 K5), 세도나(국내명 카니발), 쉐보레 말리부 등은 TSP 등급을 받았다.
국토교통부와 유로NCAP은 평가 차종 자체가 너무 적고, 미국 IIHS는 ‘선정’했다기보다 ‘통과’한 모든 차종을 소개한 수준이다. 선정된 차종 모두 적정 기준 이상의 안전성을 확보한 것은 맞지만, ‘가장’ 안전한 차라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또한 전반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어도 취약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며, 기관마다 점검 항목과 방식, 배점이 달라 종합 평가 결과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발표된 가장 안전한 차를 기억하기보다는 각 기관의 평가 세부 항목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
박혜연 기자 heye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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