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으로 인해 살처분되는 가금류의 숫자가 연일 뉴스에 나온다. ‘세상에, 서울 인구와 맞먹는 숫자네’라고 놀란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2,000만 마리에 육박하고 있다. 살처분 하지 않고 그냥 둬도 이보다 더 죽지는 않을 것 같은 어마어마한 숫자. 게다가 불과 2년 전에 조류독감으로 조류 1,400만 마리가 살처분 되었는데 그 사이 개체수는 금세 복구가 되었다. 삽시간에 복구되는 그 속도가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나뿐일까.
더 끔찍한 건 매년 반복된다는 것이다. 2010년 구제역으로 400만 마리에 가까운 소, 돼지를 생매장했던 영상이 뇌리에 남아서 아직도 문득문득 몸서리를 치곤 한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하고도 무능한 정부는 똑같은 대처법만 반복한다. 축산 농민은 물론 관련 산업에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히는 재난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된다. 올해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조류독감이 발생한 일본은 철저한 초동 방역으로 현재 100만 마리 미만의 조류가 살처분 되었다. 우리나라의 5% 수준이다. 정부는 매번 철새 탓을 하며 방역 실패를 모면하려 하지만 철새 탓을 하기에는 민망하게도 아시아에서 조류독감은 이미 풍토병으로 굳어지는 것 같다.
도시사회학자인 마이크 데이비스가 쓴 ‘조류독감’에는 무능한 정부가 여럿 등장한다. 2003년에 태국 전역의 농장에서 조류독감으로 닭이 죽어나갔다. 걱정이 된 농민이 공무원을 찾아가서 물어도 별 문제 없다고 대답했다. 그 사이 닭고기 가공 공장들은 추가 근무를 하며 평소보다 많은 닭을 도살했다. 기업이 닭 값 폭락을 우려해서 병든 닭을 마구 팔고 있는데도 당국은 알지도 못했다. 중국 정부는 전국의 농장이 몇 년째 조류독감에 노출되었는데도 다른 나라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베트남도 발병을 숨겼다. 결국 이런 무능한 정부들 때문에 독감은 조류와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 감염으로 확대되어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이 시기 아시아에서 조류독감으로 인해 30여 명이 사망했다. 다행히 아직 우리나라는 조류독감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있지 않지만 인간 감염의 가능성은 배제하지 못한다.
조류독감을 비롯한 전염병의 위험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전문가들은 산업화를 꼽는다. 농장 산업화로 동물들은 밀집 사육된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살처분 되고 있는 조류는 대부분 산란계인데 이들은 철장에 여러 마리씩 갇힌 채 A4용지 3분의 2에 해당하는 공간에 산다. 이를 소설가 조너선 샤프란 포어는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에서 붐비는 엘리베이터에 탄 것으로 표현했다. 너무 붐벼서 옆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는 몸을 돌릴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상태. 실제로 사람이 가득 찬 엘리베이터에 갇힌 적이 있다. 다시 작동하기까지 채 몇 분이 되지 않았는데 밀폐된 공간에 갇혔다는 두려움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니 이런 공간에 갇혀서 매일 알을 낳는 닭에게 면역력을 기대하기 어렵고, 유입된 바이러스가 급속하게 퍼지는 것은 당연하다.
세계사에 기록된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는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다. 추정치에 따라 다르지만 무려 5,000만~1억 명의 사망자를 냈다. 최근 발표된 연구에서 이 독감이 가장 흔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H1N1)에서 발생했지만 H5N1과 같은 조류독감 바이러스와 유사성이 많아 이와 섞이면서 변종으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관계자들이 조류독감의 확산에 긴장하는 이유이다.
최근 인간을 긴장하게 했던 대유행병들은 대부분 동물에게서 왔다. 2015년 한국을 대혼란에 빠트렸던 메르스, 에볼라는 박쥐, 신종플루는 돼지, 지카는 모기를 통해 인간에게 전해졌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서 야생동물과의 접촉면이 늘고, 그로 인해 신종 바이러스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파괴하고, 야생동물의 서식지에 침입하고, 동물을 밀집 사육으로 내모는 등 인간이 자연과 동물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한 동물로부터 오는 바이러스는 막을 수 없다. 동물이 그들의 자리에서 안전해야 인간도 안전할 수 있다.
아이슬란드 영화 ‘램스’에서 양 전염병이 발생해 살처분 명령이 내려지자 주인공 형제는 이를 거부하고 양을 산 속에 풀어주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 길에서 형제와 양들은 거대한 눈 폭풍을 만나 한치 앞도 안 보이는 곳을 헤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인간이 동물과 어떤 공존의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우리의 미래처럼 보였다. 인간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책: ‘조류독감’, 마이크 데이비스,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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