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란 말은 19세기 중후반 동북아시아에서 번역어로 만들어졌다. 이미 있던 말인 共和를 republic에 대한 번역어로 가져다 쓴 것이다. 영어 republic은 라틴어 res publica에서 나왔다. res는 사물, 물건, 재산을 뜻하는 명사고 publica은 ‘공적인’이란 뜻의 형용사다. 어원을 그대로 살린다면 republic은 ‘공적인 것, 자산, 일’ 등이 되며, 그래서 영어권에서는 ‘common wealth’라고 풀어쓰기도 했다.
사마천의 “사기 본기”에는 주 나라의 폭군 얘기가 나온다. 여왕(厲王)은 포악하고 사치하고 교만해서 백성들이 들고 일어섰고 여왕은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왕이 없는 상황에서 소공과 주공 두 재상이 정무를 함께 맡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연호를 ‘공화’라고 했다는 것이다.
共은 갑골문에서 양손으로 무엇인가를 받쳐 든 모습을 나타내고 있고 和의 금문 자형은 입으로 갈대 피리(龢)를 불어서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압축해서 표현한 것이다. 和는 고대 중국에서 애초에는 소리나 맛의 조화라는 뜻으로 썼고 점차 인간관계나 사회관계로 확장해서 썼다.
근대 이전에는 없던 정치 제도를 가리키는 개념적 표현인 republic과 democracy(민주주의)가 동북아시아에 소개되자 이것들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는 아주 곤란한 문제였다. 제도를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republic과 democracy가 서로 헷갈리는 게 당연했다. republic이 ‘민주국(民主國)’으로, democracy가 ‘공화정치(共和政治)’로 번역되던 때도 있었다. republic이 국가 형태를 가리키는 경우 민국(民國)이란 번역어가 만들어졌는데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이나 중화민국이란 말에 살아 있다. 또 republic은 ‘합중정치지국(合衆政治之國)’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republic과 democracy에 대해서 각기 공화와 민주라는 번역어가 정착된 것이다.
민주란 말은 고대 중국에서 말 그대로 백성의 주인, 곧 군주를 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갑골문에서 民은 눈동자를 바늘과 같은 것이 찌르는 형태를 하고 있다. 즉, 일부러 눈을 멀게 만든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해석된다. 그 후 民이 백성 일반을 가리키게 되면서 원뜻이 소멸하자 원뜻을 보존하기 위해서 맹(氓) 자를 새로 만들었는데 이 글자 역시 나중에는 백성 일반을 뜻하게 되었다.
democracy는 그리스어에서 demos(인민, 민중)에 의한 지배를 뜻하는 말이다. 원래 demos는 고대 도시 아테네 주변의 지역들 및 그 지역에 사는 주민을 가리켰다. 군주정이나 귀족정이 성행하던 고대에는 democracy가 부정적으로 다뤄지기도 했지만, 근대에 와서는 역전되었다. 어디에서든 민주공화국이 대세가 된 것이다.
democracy의 반대말 영역에 속하는 말은 dictatorship(독재 정부), hierarchy(위계 제도), bureaucracy(관료주의) 등일 것이다. 이 말들의 어근은 각기 독재자의 말, 신성한 것, 사무실의 책상이다. 이 말들은 특권, 반칙, 부정부패, 정경유착, 비밀 등의 의미를 공유한다. 쉽게 말해서, 민주주의는 특권 등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영어 private(사적인)의 라틴어 어원은 ‘privare(탈취하다)’다. 즉, 공동체에 속하는 것을 탈취해서 사적인 것으로 만드는 행위나 과정, 혹은 그 결과물 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라틴어에서는 private와 republic(공동체의 것)이 의미상 직접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republic의 구성 요소인 public은 라틴어 pubes(성년 주민)에서 생겨났다. 성년 주민의 세계에만 제한해서 공적이란 의미를 사용한 것은 오늘날 매우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튼 pubes는 영어 단어 puberty(사춘기)에 남아 있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민주공화국의 역사적이고도 어원적 의미를 구현하고 있다. 그중에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공동체의 것, 공공의 것, 공화국 등을 주인인 민중이 지켜내는 일에는 성년과 미성년이 따로 있을 수가 없다.
이재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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