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터키 주재 러시아대사가 앙카라의 한 전시회에서 터키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저격범이 공격 현장에서 시리아 내전 관련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추후 전황과 터키ㆍ러시아 간 관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드레이 카를로프(62) 주터키 러시아대사는 19일 오후(현지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터키인의 눈으로 본 러시아’ 개막식에서 축사하던 중 현장에 잠입한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성이 뒤에서 쏜 총을 맞고 쓰러졌다. 카를로프 대사는 즉시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졌다.
터키 내무부에 따르면 저격범은 메블뤼트 메르트 알튼타시(22)라는 이름의 전직 터키 경찰관이다. 일부 언론은 알튼타시가 터키 쿠데타 연계 혐의로 최근 해고됐다고 보도했다. 경찰로 위장해 전시회장에 잠입한 알튼타시는 카를로프 대사의 뒤로 접근해 대사를 향해 여덟 발 이상을 쐈다. 알튼타시는 왼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킨 채 “알레포를 잊지 말라, 시리아를 잊지 말라, 우리는 지하드(이슬람 성전)를 추구하는 선지자 무함마드를 지지하는 이들의 후예다”고 소리를 질렀다고 목격자들은 증언했다. 그는 또한 “(시리아와 알레포를) 압제한 이들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신은 위대하다” 등을 외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알튼타시는 현장에서 사살됐다고 터키관영 아나돌루통신이 보도했다.
숨진 카를로프 대사는 40년을 외교가에서 일한 정통 외무관료로 한반도와도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한국어에 능해 2000년대 초ㆍ중반 북한 주재 대사를 지냈다.
이번 저격사건은 시리아 정권이 알레포에서 4년 반 만에 승리를 거두고 수니파 반군 철수가 진행되는 중에 발생했다. 러시아는 시리아내전에 개입해 시아파 민병대 등과 함께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원, 알레포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반대로 터키는 줄곧 시리아 반군을 지원했다.
사살되기 전 발언에 비춰 저격범은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작전에 보복할 의도로 러시아대사를 저격한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대사가 터키경찰관의 보복성 테러행위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이번 사건은 양국 관계와 시리아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시아는 즉각 알튼타시의 저격을 테러행위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같은 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으로부터 카를로프 대사 피살 보고를 받은 뒤 대화에서 “대사 살해는 러시아ㆍ터키 관계 정상화와 시리아 사태 해결에 차질을 초래하려는 목적의 도발”이라며 “러시아의 대응은 국제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강화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도 앞서 기자들에게 “오늘은 러시아 외교의 비극적인 날”이라며 “테러리즘은 전진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그것과 단호히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터키 역시 이번 사건을 테러로 선언하며 러시아와 관계 정상화에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을 설명했다고 이브라힘 칼른 터키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 터키 외교부는 성명을 내고 “이번 공격이 양국 관계에 그늘을 드리우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원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