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한 천경자 유족측은 19일 검찰조사 결과 진품 결론이 나자 “검찰은 국립현대미술관과 동조해, 세계 최고의 과학감정기관의 결과를 무시한 채 안목감정위원들을 내세워 미인도를 진품으로 둔갑시키는 해괴한 해프닝을 저질렀다.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안목감정 위원 명단 공개를 요구하며 추가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천경자 화백 차녀 김정희 씨의 법률대리인 배금자 변호사는 이날 서면 자료를 통해 “(프랑스)뤼미에르 감정팀이 감정을 마치고 출국한 후, 곧 바로 국내의 9명의 안목감정위원들을 불러모아 안목감정을 따로 실시했다”며 “검찰은 이들 안목감정위원들의 명단을 끝내 공개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 변호사는 “정부와 관련 인사들을 상대로 항고와 재정신청, 민사소송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배 변호인은 ‘미인도’를 감정한 뤼미에르팀 감정의 객관성을 강조하며 감정 결과가 2017년 국제과학저널에 소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뤼미에르팀은 3가지 검증 포인트 만으로도 충분하지만, 9가지 검증을 거쳤으며 모든 검사는 일관성 있게 미인도가 진품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또 안목감정 결과를 증거로 채택한 검찰 판단에 대해 1991년 미인도 논란 초기와 흡사한 “구악의 답습”이라고 비난했다.
배 변호인은 “서구에서는 이미 안목감정을 과학감정으로 대체해 작품의 진위감정을 한 지가 오래”라며 “과학은 눈부시게 앞서가고 있는데 한국의 문화계와 검찰은 아직도 제자리 걸음으로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인도 논란은 미술관이 1991년 ‘움직이는 미술관’ 전시에서 처음 미인도를 대중에 공개하며 시작됐다. 천 화백은 이 그림에 대해 위작 의혹을 제기했고, 논란이 일어난 지 약 보름 만에 절필을 선언했다. 1999년 고서화 위작 등으로 구속된 권춘식씨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화랑 하는 친구 요청으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재연됐으나 진술의 신빙성과 공소시효 등의 이유로 수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잠잠했던 논란은 지난해 10월 천 화백 타계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유족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위작 논란의 해결 의지를 밝혔고, 12월 이 작품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에 미인도가 위작임을 시인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미술관은 이에 답하지 않았고 유족들은 올해 4월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의 관계자를 사자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 허위공문서 작성 등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ㆍ고발했다. 검찰은 유전자(DNA) 분석을 실시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천 화백의 진품 12점을 확보해 대조한 필적 감정에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프랑스 미술품 감정기관 뤼미에르 테크놀로지는 유족의 강력한 요청으로 감정에 참여했다. 국내 감정기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유족 측이 직접 감정 비용을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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